장 앙트완 와토의 '게르생의 간판'부분(1720).
장 앙트완 와토의 '게르생의 간판'부분(1720).
“미술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다소 충격적인 발언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뉴욕의 저명한 아트 딜러인 마크 클럼처다. 미술시장 관계자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를 부정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르면 미술시장은 하나의 시장이 되기에는 규모가 너무 작은데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일종의 ‘기펜상품’ 시장이라는 것이다.(아담 린데만 ‘현대 미술품 수집’ 중) 19세기 경제학자 로버트 기펜이 제기한 이 학설은 가격이 내려갈수록 수요가 증가하는 게 아니라 더 감소하는 이상한 특성을 지닌 상품 시장을 말한다.

그렇다고 미술시장이 예측불허인 것은 아니다. 경제의 흐름을 반드시 좇아가지는 않지만 경매가격의 추이에서 알 수 있듯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은 크게 1차 시장과 2차 시장으로 나뉜다. 1차 시장은 미술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처음 거래되는 시장이고, 2차 시장은 한 번 이상 거래된 작품을 취급하는 시장이다. 우리가 흔히 상업 갤러리라고 부르는 곳이 1, 2차 시장에 해당한다. 경매도 2차 시장에 포함된다. 당연히 2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미술품이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안정적이다. 일단 검증된 작품들이기 때문에 재판매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미술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1차 시장 역할을 하는 갤러리다. 그들은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작가를 발굴한다. 안타깝게도 국내 갤러리 중 이런 1차 시장 역할을 하는 곳은 겨우 10% 남짓하다. 최근 국내 미술계의 침체는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미술사)에 따르면 1차 시장 기준으로 서구에서 미술시장이 태동한 것은 14세기 이탈리아라고 한다. 흑사병 창궐 이후 기독교 성화를 중심으로 미술품 거래가 확산되면서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 같은 화상이 출현했다는 것이다.(‘그림값의 비밀’ 중) 2차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는데 당시 주도적 역할을 한 상인계급의 미술품 수요가 폭발하면서 미술품 거래가 활성화됐다.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미술시장은 20세기 중반에 등장했다. 런던에서 설립된 경매사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양강 체제를 구축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는 18세 중반부터 미술품 경매를 시작했지만 소더비는 1913년에서야 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물론 근대적 미술시장의 형성은 이보다 훨씬 앞서지만 거래 데이터가 불투명해 정확한 시장 규모라든가 매매 추이를 밝히기 어렵다.

양대 경매사의 부상으로 거래내역이 밝혀지고 ‘메이-모제스 미술지수’가 만들어지면서 증시 같은 시장적 차원에서의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또 유럽미술재단(TEFAF)이나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닷컴 같은 데서 해마다 발표하는 각종 데이터도 미술품을 투자 마인드로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 TEFAF가 발표한 ‘2013 세계 미술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미술시장 규모는 660억달러로 2012년에 비해 8%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속내를 들여다보면 미술시장의 체질이 그리 건강하지 못해 보인다. 극소수의 작품이 시장 규모를 좌지우지했기 때문이다. 100만유로(약 127만달러) 이상에 판매된 0.5%의 작품이 전체 판매가의 44%를 차지했다. 5만유로(약 6만3300달러) 이하의 중저가 작품이 전체 거래량의 93%를 차지했지만 총 판매가격은 18%에 불과했다. 승자독식 구조인 것이다. 슈퍼리치 컬렉터가 선호하는 작가는 50~100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미술시장의 왜곡된 상황을 말해준다.

[CEO를 위한 미술산책] 비쌀수록 잘 팔리는 기펜재인 미술품…정서가치는 얼마일까
여기에는 미술품을 투자 마인드로만 접근한 데도 한 원인이 있다. 유명세, 희소성 같은 상업적 소비재의 가격 결정 요인이 미술품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예술품은 상품이기 이전에 정서적 향유의 대상이다. 주식은 때때로 휴짓조각이 되기도 하지만 예술품은 상품가치는 폭락할지언정 정서적 가치는 고스란히 남는다.

마크 클럼처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자. “예술은 하나의 시장이라기보다 인간 의식의 부산물이다. 그것은 공동체, 사회 또는 문명의 전반적인 번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예술을 소비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