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빠진 규제개혁위 > 김태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직무대행 겸 경제분과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개혁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바빠진 규제개혁위 > 김태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 직무대행 겸 경제분과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규제개혁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공정위가 관할하는 등록·미등록 규제에 대해 광범위한 규제완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대표적 규제부처인 공정위가 발빠르게 나섬으로써 다른 부처들도 속속 규제혁파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노 위원장이 경제민주화 바람이 몰고온 미등록 규제를 손보겠다고 한 것은 경제계가 미처 예상치 못한 ‘선물’이라는 평이다.

◆숨은 규제 정비 나선다

[규제개혁 이제 실천이다] '250m내 같은 편의점 금지'…법적 근거없는 과잉 규제 손본다
미등록 규제는 중앙정부 실무자들조차 다루기 어려울 정도로 악성규제로 꼽힌다. 법적 근거 없이 공무원들의 유권해석과 재량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공정거래 확립’이라는 명분 아래 일정 부분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어 여간해서 없애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미등록 규제는 계속 늘어온 추세였다.

공정위의 미등록 규제로는 모범거래기준과 가이드라인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가맹사업, 유제품업 등에서 불공정거래가 많다는 지적과 민원이 잇따르자 2012년 이후 해당 업종의 모범거래기준을 만들어왔다. 유제품에 대한 모범거래기준은 지난해 5월 이른바 ‘남양유업 대리점 밀어내기 사태’로 본사와 대리점 간 불공정거래 관행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자 그해 11월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들 기준은 업체들의 준수 및 금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법적 강제성은 없는 규정이지만 해당 업체들은 제재 권한을 갖고 있는 공정위의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 내용은 과잉 규제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250m 안에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을 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대표적이다.

가이드라인은 공정위 소관 법률의 구체적인 준수 방법과 금지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하위 법령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도 모호한 내용을 자세히 풀어 낸 규정이다. 대규모유통업의 납품업자 종업원 파견 가이드라인, 제약분야 공정거래 가이드라인,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 하도급대금 조정협의 가이드라인 등이 있다. 가이드라인도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어길 경우 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일부 내용은 너무 세밀하게 규정돼 있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많았다. 공정위가 만든 각종 지침과 표준계약서 등도 미등록 규제로 이번에 혁파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미등록 부문의 초기 규제완화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전망이다. 노 위원장은 “시장 여건을 생각하지 않고 모든 규제를 완화하면 시장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적절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하도급 관련 대금지급보증의무 규정, 상조업체 등록규정 등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신중하게 검토할 방침이다.

◆규범과 규제는 구별하겠다

공정위의 등록 규제 중 공정거래에 필수불가결한 법규정을 제외한 나머지 40%를 대폭 손질하겠다는 것도 눈에 띈다. 공정위는 보편적인 법 규정을 ‘규범(rules)’으로 판단하고 이 규정은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규제(regulations)’와 다른 일반 법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노 위원장은 “공정위의 법규정 가운데 60% 정도는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일반 법원칙으로 판단된다”며 “나머지 40%는 검토해 적극 폐지하거나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경제상황, 정책기조 등에 따라 바뀌는 등록 규제를 중점 개선 대상으로 꼽고 있다. 또 공정거래법상 국제계약 관련 규정 등 집행실적이 거의 없는 규제나 국제적 추세와 판례에 부합하지 않는 규제도 완화하거나 폐지할 계획이다.

■ 모범거래기준

공정위가 유제품, 편의점 등의 업체와 종사자들 간 공정한 거래 환경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만들었다. 준수사항, 금지사항 등을 담고 있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다. 하지만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힘을 배경으로 실질적인 영향력은 강하다.

■ 가이드라인

가이드라인공정위 소관 법률에 대한 구체적인 준수 방법을 담고 있다. 해당 내용을 따르지 않을 경우 법 위반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하도급대금 조정협의 가이드라인은 원재료 가격 정의, 조정협의 신청 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지침

지침가이드라인과 비슷한 성격이지만 공정위의 법 집행 기준이 보다 명확해 공정위가 위반 사건을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기술자료 제공 요구, 유용행위 심사지침은 위법성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