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쓰는 경제학원론] '한 방' 꿈에 부풀어 오른 증시 거품…주가는 결코 기업 실적을 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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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노믹스 -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본 이상과열론
월가의 주식중개인 머니게임에 중독돼 서슴지 않고 불법행위
그의 언변에 홀린 사람들 '거품'투자에 뛰어들고 그도 서서히 타락의 길로…
월가의 주식중개인 머니게임에 중독돼 서슴지 않고 불법행위
그의 언변에 홀린 사람들 '거품'투자에 뛰어들고 그도 서서히 타락의 길로…
“돈 버는 것? 아주 간단해. 1달러짜리를 100달러에 팔 수 있는 정보를 안다고 슬쩍 흘려봐. 그럼 모두가 돈을 싸들고 달려올 테니까.”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년)’는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의 자전적 소설 ‘월가의 늑대’를 각색한 블랙코미디다. 벨포트는 1990년대 주식 거품을 유도한 뒤 차익을 내고 되파는 수법으로 억만장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 영화 초반 스물두 살의 청년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그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등장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월스트리트에서다.
‘찌라시’의 경제학
1980년대 후반. 한 증권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벨포트는 투자자로부터 전화받는 일을 한다. 당시 미국 금융시장은 대형 기업공개(IPO)가 이어지며 장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정보가 널리 공유되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주식중개인들이었다. 영화 속 중개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투자는 정글입니다. 황소(bull market·상승장) 혹은 곰(bear market·하락장) 같은 위험에 직면하죠. 전문가들이 금융 정글에서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벨포트의 회사에는 하루 수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개인들은 주식 거래를 성사시킨 뒤 수수료를 부지런히 챙겼다. “이런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를 안 하면 바보죠. 마이크로소프트(MS) 주식 2만주만 사두세요. 바로 부자가 됩니다.” 오늘날 증권가 ‘찌라시’의 원형인 셈이다.
전화로 임의의 고객에게 접근해 상품을 판매하는 세일즈 방법을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한다. 중개인과 투자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이 클수록(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한 정보를 갖고 있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블랙먼데이의 악몽
벨포트가 일을 한 지 6개월째 되던 월요일, 증시 폭락이 시작됐다. 미국의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6% 하락한 것. 블랙먼데이(1987년 10월19일)였다. 한 달 후 그가 일하던 증권회사는 문을 닫고 벨포트는 일자리를 잃고 만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론’이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블랙먼데이를 맞기 50여일 전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이 40%에 달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폭락의 조짐을 엿본 사람은 없었다.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수가 한 쪽 방향을 확신할 경우 시장의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게 된다.(→블랙먼데이와 이상과열론)
실러 교수는 이상과열이 일어난 또 다른 사례로 1990년대 미국 S&P500지수 시장을 들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신경제 혁명’이 일어나 기업들이 끝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졌다. <그래프 1>은 1871년부터 2011년까지 S&P500지수를 미국 기업의 실질 수익지표와 함께 보여준다. 보다시피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러 교수는 이를 근거로 “주가가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헛된 믿음이었다”고 지적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주가 하락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는 집단 최면에 걸렸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클수록…
실직한 벨포트는 신문에 실린 구인 광고를 보고 한 중개센터를 찾는다. 작고 허름한 그곳에는 시세판도, 컴퓨터도 없었다. 그냥 돌아가려는 그에게 센터장은 외친다. “블루칩(대형 우량주)을 팔아 가져갔던 수수료가 1%쯤 됐나? 우린 수수료가 50%라네.”
그곳은 페니 주식(penny stock)을 파는 곳이었다. 페니 주식은 값이 싸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블루칩과는 정반대다. 보통 투기성으로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 페니 주식은 리스크가 블루칩보다 훨씬 크지만 대박이 터질 가능성도 높다. 모 아니면 도, 하이 리스크(고위험) 하이 리턴(고수익)이다.
벨포트는 이 페니 주식을 파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어느 날 한 형제가 동네 헛간에서 레이더 감지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주식을 팔아치운다. “자, 고급 정보를 하나 드리죠. 국방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회사가 있어요. 저희 애널리스트 분석 결과 이 회사는 곧 폭풍 성장할 것입니다. 6000달러만 투자하세요. 곧 6만달러가 될 테니까요.”
페니 주식 시장에서 돈 냄새를 맡은 벨포트는 동료들을 모아 페니 주식을 전문으로 중개하는 회사까지 차린다. 주가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허위 사실도 유포했다. 그로부터 4년 뒤, 그는 4900만달러의 자산을 가진 월가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1달러로 100달러를 벌고 싶은 ‘일확천금’의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달콤한 말로 그 깊숙한 욕망을 자극하면 된다. 벨포트는 그렇게 번 돈으로 별장과 요트를 샀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행복감이 찾아오지 않았다. 돈이 모든 것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벨포트는 마약과 술, 섹스에 빠진다. <그래프 2> 같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통하지 않았다. 보통 재화는 소비할 때마다 효용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스크림 한 개를 먹었을 때의 효용이 열 개째 먹었을 때 효용보다 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벨포트의 돈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원했다. 머니 게임을 한다는 그 짜릿한 행위 자체에 중독돼 버린 것이다.
영화의 결말. 그는 주가 조작 혐의로 받은 30여개월의 징역을 마치고 세일즈 전문가로 TV쇼 강단에 선다. 강연 주제는 ‘상품을 잘 파는 법.’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 카메라는 벨포트의 강연에 참석한 관객들의 상기된 얼굴을 자세히 비춘다. 교주의 연설을 듣는 종교단체의 회원들처럼 무섭게 집중한 표정. 관객들의 얼굴이 젊은 시절의 벨포트와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4년)’는 주식 브로커 조던 벨포트의 자전적 소설 ‘월가의 늑대’를 각색한 블랙코미디다. 벨포트는 1990년대 주식 거품을 유도한 뒤 차익을 내고 되파는 수법으로 억만장자가 된 입지전적(?) 인물. 영화 초반 스물두 살의 청년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는 그 꿈을 이루기에 가장 적절한 곳에서 등장한다.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월스트리트에서다.
‘찌라시’의 경제학
1980년대 후반. 한 증권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한 벨포트는 투자자로부터 전화받는 일을 한다. 당시 미국 금융시장은 대형 기업공개(IPO)가 이어지며 장기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정보가 널리 공유되지도 못하던 때였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주식중개인들이었다. 영화 속 중개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투자는 정글입니다. 황소(bull market·상승장) 혹은 곰(bear market·하락장) 같은 위험에 직면하죠. 전문가들이 금융 정글에서 당신을 안내할 것입니다.”
벨포트의 회사에는 하루 수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중개인들은 주식 거래를 성사시킨 뒤 수수료를 부지런히 챙겼다. “이런 기술을 갖춘 기업에 투자를 안 하면 바보죠. 마이크로소프트(MS) 주식 2만주만 사두세요. 바로 부자가 됩니다.” 오늘날 증권가 ‘찌라시’의 원형인 셈이다.
전화로 임의의 고객에게 접근해 상품을 판매하는 세일즈 방법을 콜드 콜(cold call)이라고 한다. 중개인과 투자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이 클수록(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우월한 정보를 갖고 있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블랙먼데이의 악몽
벨포트가 일을 한 지 6개월째 되던 월요일, 증시 폭락이 시작됐다. 미국의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6% 하락한 것. 블랙먼데이(1987년 10월19일)였다. 한 달 후 그가 일하던 증권회사는 문을 닫고 벨포트는 일자리를 잃고 만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의 ‘이상과열(irrational exuberance)론’이 당시 상황을 잘 설명해준다. 블랙먼데이를 맞기 50여일 전 다우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초 대비 주가 상승률이 40%에 달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대폭락의 조짐을 엿본 사람은 없었다.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 다수가 한 쪽 방향을 확신할 경우 시장의 쏠림 현상은 가속화하고 거품이 부글부글 끓게 된다.(→블랙먼데이와 이상과열론)
실러 교수는 이상과열이 일어난 또 다른 사례로 1990년대 미국 S&P500지수 시장을 들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신경제 혁명’이 일어나 기업들이 끝없이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퍼졌다. <그래프 1>은 1871년부터 2011년까지 S&P500지수를 미국 기업의 실질 수익지표와 함께 보여준다. 보다시피 주가는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나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러 교수는 이를 근거로 “주가가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헛된 믿음이었다”고 지적했다. 사회 구성원 전체가 주가 하락 가능성을 전면 부인하는 집단 최면에 걸렸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클수록…
실직한 벨포트는 신문에 실린 구인 광고를 보고 한 중개센터를 찾는다. 작고 허름한 그곳에는 시세판도, 컴퓨터도 없었다. 그냥 돌아가려는 그에게 센터장은 외친다. “블루칩(대형 우량주)을 팔아 가져갔던 수수료가 1%쯤 됐나? 우린 수수료가 50%라네.”
그곳은 페니 주식(penny stock)을 파는 곳이었다. 페니 주식은 값이 싸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회사의 주식을 말한다. 블루칩과는 정반대다. 보통 투기성으로 장외시장에서 거래된다. 페니 주식은 리스크가 블루칩보다 훨씬 크지만 대박이 터질 가능성도 높다. 모 아니면 도, 하이 리스크(고위험) 하이 리턴(고수익)이다.
벨포트는 이 페니 주식을 파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다. 어느 날 한 형제가 동네 헛간에서 레이더 감지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주식을 팔아치운다. “자, 고급 정보를 하나 드리죠. 국방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는 회사가 있어요. 저희 애널리스트 분석 결과 이 회사는 곧 폭풍 성장할 것입니다. 6000달러만 투자하세요. 곧 6만달러가 될 테니까요.”
페니 주식 시장에서 돈 냄새를 맡은 벨포트는 동료들을 모아 페니 주식을 전문으로 중개하는 회사까지 차린다. 주가 조작도 서슴지 않았다. 허위 사실도 유포했다. 그로부터 4년 뒤, 그는 4900만달러의 자산을 가진 월가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욕망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1달러로 100달러를 벌고 싶은 ‘일확천금’의 꿈은 누구에게나 있다. 달콤한 말로 그 깊숙한 욕망을 자극하면 된다. 벨포트는 그렇게 번 돈으로 별장과 요트를 샀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행복감이 찾아오지 않았다. 돈이 모든 것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벨포트는 마약과 술, 섹스에 빠진다. <그래프 2> 같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도 통하지 않았다. 보통 재화는 소비할 때마다 효용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이스크림 한 개를 먹었을 때의 효용이 열 개째 먹었을 때 효용보다 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벨포트의 돈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원했다. 머니 게임을 한다는 그 짜릿한 행위 자체에 중독돼 버린 것이다.
영화의 결말. 그는 주가 조작 혐의로 받은 30여개월의 징역을 마치고 세일즈 전문가로 TV쇼 강단에 선다. 강연 주제는 ‘상품을 잘 파는 법.’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 카메라는 벨포트의 강연에 참석한 관객들의 상기된 얼굴을 자세히 비춘다. 교주의 연설을 듣는 종교단체의 회원들처럼 무섭게 집중한 표정. 관객들의 얼굴이 젊은 시절의 벨포트와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시네마노믹스 자문 교수진 가나다순
▲송준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정재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