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도전받은 경제학이 좀 더 적극적으로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위기 예측도, 대안도 내놓지 못한 경제학자들의 반성의 목소리다. 해외 사례에 주로 의존하는 국내 경제학 풍토에도 쓴소리가 나왔다.

21일 한국경제학회와 한국경제의 분석패널이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공동주최한 ‘경제학 방법론의 평가와 대안’ 세미나에서다.

발표자로 나선 이왕휘 아주대 교수는 “금융위기는 최고의 사회과학으로 군림해온 경제학의 명성에 심각한 타격을 안겼다”며 “기존 경제학이 금기시하던 정책들이 대거 채택된 것이 대표적”이라고 분석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고금리정책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중앙은행은 양적완화와 함께 금리를 0%대까지 떨어뜨렸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완화됐던 자본통제도 다시 강해졌다.

이 교수는 “이는 탈규제가 시장을 완전하게 만든다는 기존 경제학의 전제를 전면 재검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80년대 긴축재정을 강조하던 IMF가 경기부양을 위한 각국의 재정적자를 용인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봤다.

좌승희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제정책의 ‘정치화’를 비판했다. 그는 “금융위기는 모든 국민들에게 집을 한 채씩 갖게 하겠다는 미국 정치가 원인이었다”며 “기존 경제학에 갇혀 있지 말고 정치경제학까지 연구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류경제학의 이론적 토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만섭 고려대 교수는 “학문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주류경제학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다 보니 위기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럼에도 이 같은 자성이 변화로 이어지진 못했다”고 돌아봤다.

대표적 교과서인 ‘맨큐의 경제학’ 첫 장에 나오는 10가지 경제학 원칙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는 십계명을 본뜬 것으로 곧 절대로 무너질 수 없는 진리를 암시한다”며 “경제학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모색할 뿐 이론적 틀을 유지하려는 관성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연세대 교수)은 국내 현실에 맞는 ‘한국 경제학’ 육성을 과제로 들었다. 이와 관련해 조장옥 서강대 교수는 “국내 학자들은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출간하는 데 지나치게 정력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경제학자들도 국내보다 외국 자료를 분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비판했다.

이상욱 한양대 교수는 경제학의 기본전제인 ‘합리성’을 철학적으로 재검토해 주목받았다.

그는 “현대 경제학자들은 인간을 주체적 결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규정한다”며 “하지만 인간의 진화에서 생겨난 사회적 감성적 능력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