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헤이그
헤이그는 네덜란드의 정치 중심지이자 국제회의가 자주 열리는 외교 중심지다. 헤이그(Hague)는 영어식 이름이고 네덜란드에서는 덴 하흐(Den Haag)라고 부른다. 유명한 축구클럽 이름도 ADO 덴 하흐다. 13세기 이름 ‘백작의 정원’(des Graven hage)을 스흐라벤하흐(’s-Gravenhage)로 줄여 부르다 덴 하흐라고 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백작의 영지여서 귀족들이 많이 몰린 탓인지 자연스레 유럽의 외교 사랑방이 됐다. 17세기부터는 더 많은 국제회의가 열렸다. 1899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뒤 1901년 국제중재재판소가 설치됐고 1922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생겼다. 네덜란드 정부 기관과 각국 공관, 유엔 기구도 몰려 있다. 암스테르담은 명목상의 수도일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100여년 전인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로 파견된 이준 열사가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다 실패하고 이곳에서 순국했다. 당시의 국제정세와 만국평화회의의 성격도 잘 모르고 순진(?)하게 달려들었을 뿐이다. 고종은 이 일로 일제의 침략을 촉진시키는 구실만 주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구한말의 기구한 역사처럼 지금도 국가간의 외교전은 치열하게 전개된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의 법적 해결 무대로 곧잘 내세우는 것도 이곳에 있는 국제사법재판소다. 이래저래 복잡미묘한 게 국제 분쟁이요 외교 갈등이다. 그래서 오늘 개막하는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만나 얽히고설킨 역사의 난마를 어떻게 풀지 궁금하다. 10년 전 한나라당 대표와 자민당 간사장으로 만난 뒤 한동안은 관계가 부드러웠다. 미국, 중국 정상과도 연쇄적으로 만나는 자리이니만큼 현대판 만국평화회의라고 할 만하다. 북한 핵무기와 통일 문제까지 잇는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대통령은 3년 전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아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헤이그 회의에) 입장도 안 시켜줘 그분들 심정이 터질 것 같았을 것”이라며 “100년이 지난 후 우리 모습에 여러 감회가 새로웠다”고 했다. 한 세기 전 망국의 한이 서린 헤이그에서 한 세기 뒤를 내다보며 통일 해법을 찾는 지금의 감회는 더 새로울 것이다.

이준 열사 기념관의 정식 명칭은 이준평화박물관이다. 그 곁의 평화궁전 앞에는 197개국의 돌을 모아 만든 광장과 ‘평화의 불꽃’ 조형물이 있다. 거기엔 우리나라 돌과 북한 돌도 있다고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