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명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다니는 A씨는 10대 대형 로펌 취업 과정에서 탈락했다. 로펌에서 채용의 일환인 인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과제물을 내거나 시험을 치는 과정에서 전년도 과제물을 구해 이용한 이른바 ‘족보’가 문제가 됐다. 로펌 입사과정에서 비밀리에 유통되는 ‘족보’는 전년도 과제물과 시험 내용 등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A씨는 로펌 측이 과제물로 내준 소송 답변서를 쓰면서 족보에 있는 답안을 그대로 베꼈다. 로펌 인사팀이 이를 문제삼아 A씨를 탈락시킨 것이다.

최근 대형 로펌들이 로스쿨 출신을 뽑는 과정에서 일부 로스쿨생 사이에 족보를 비밀리에 공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통상 3~4주간 인턴 과정을 거쳐 최종 입사자를 선발하는 로펌은 부정행위자를 가려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형 로펌은 과거엔 신입 변호사를 뽑을 때 사법시험 성적과 사법연수원 성적을 종합적으로 봤다. 하지만 로스쿨 졸업생이 응시하는 변호사시험은 합격·불합격만 가르는 시험으로 성적이 공개되지 않아 성적으로 뽑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로펌들은 자기소개서, 면접에 이어 인턴과정 도입 등 여러 입사 전형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를 대리 작성하는 일이 발각되는 등 입사 과정의 공정성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족보 문제 등 부정행위 시비로 컨펌(입사 확정)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정보의 불균형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 소재 명문대 로스쿨 출신 몇 명이 로펌 인턴 과정에서 단체 카톡방을 열어 전년도 족보를 공유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른 로스쿨 출신들은 이 로펌에 합격한 선배가 별로 없어 족보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이 로펌의 변호사는 “소수의 로스쿨을 제외한 나머지 로스쿨은 인맥 차이로 족보를 구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족보와 관련해 로스쿨 측과 로펌 측의 견해가 갈린다. 한 명문 로스쿨 학장은 “족보는 대학 수업에도 있는 것”이라며 “로펌에 입사할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족보를 구하고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부정행위가 아닐지라도 족보에 나온 답안을 그대로 베껴 쓰는 행위 등은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배석준/양병훈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