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독일보다 성공적인 통일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언급한 것은 통일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갑작스런 통일이 아니라 준비된 통일을 원한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이며, 통일의 의지와 역량을 갖추고 있을 때 비로소 통일은 축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의 경제위기 속에서 독일은 통일 이후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독일의 산업경쟁력 덕분이다. 지역통합의 심화와 함께 관세와 환율 같은 교역장벽이 철폐된 유럽 단일시장을 독일 상품이 석권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강화된 산업경쟁력은 동·서독 통합과정에서 얻은 실패 경험 덕분이다. 독일 통일의 최고 실패작은 화폐통합이다. 동·서독 화폐를 1 대 1로 교환하고 근로임금도 동일하게 지급했다.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 때문에 경쟁력을 상실한 동독기업은 무더기로 도산했다.

서독은 동독지역에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약 5%에 달하는 재정지원을 했고 이것은 국가부채가 급격히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 슈뢰더 정부는 임금과 복지를 과감히 축소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좌파정부가 지지기반인 노동자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관철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교역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수출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회복했다.

독일 통일의 또 다른 교훈은 사유화의 실패다. 콜 총리는 통일 직전 “통일세 없이 독일 통일을 완성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가 염두에 뒀던 재원은 동독의 막대한 국유재산이었다. 통일 직후 출범한 사유화신탁청은 4년 동안 8500개의 국유기업, 240만ha의 농경지, 군과 비밀경찰의 부동산을 매각했다. 그러나 5000억마르크의 수익을 기대했던 당초 예상과 달리 2400억마르크의 적자를 초래했다. 원소유주에게 현물상환을 약속함으로써 250만건에 달하는 소유권 반환청구 소송이 제기됐던 것이다. 사유화가 지연된 기업의 누적된 적자는 고스란히 국가의 부담이 됐고 신탁청은 적자기업을 무상 혹은 보조금을 주면서 매각할 수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될 드레스덴은 작센주의 주도로서 독일 최고의 문화 및 산업도시로 재탄생한 옛 동독 도시다. 작센왕은 독일 바로크의 걸작이라고 불리는 호화궁전을 짓고 미술거장의 작품을 수집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초연을 유치했다. 화려한 건축예술과 미술보물을 자랑하던 드레스덴은 2차대전 중에 처참하게 파괴됐고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몰락했다. 하지만 전쟁과 분단으로 불타고 찢겼던 드레스덴은 꿈처럼 아름다운 거리 모습을 되찾고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드레스덴의 중흥은 본질적으로 독일의 동유럽 시장 확보를 통해 이뤄졌다. 동서 냉전에 의해 사라졌던 중유럽의 지정학적 개념이 되살아나면서 독일은 서유럽과의 관계 심화와 동시에 동유럽과의 관계 확대를 꾀했고 드레스덴이 전략적 교두보가 된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도 휴전선 철조망에 가로막힌 북방통로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반도를 에너지, 교통, 통신의 대륙연결망에 접속하고 동북아 협력권의 허브로 만들고자 하는 구상이다. 해양과 대륙 쌍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반도의 지정학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정책이다.

저력이 있는 민족은 시련을 겪은 후에 더 강하게 솟구치는 법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장으로서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25~28일 독일을 방문한다. 우리는 통일 후발국가로서 독일의 과오와 성과를 검토해 독일보다 더 성공적인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우리가 긴 호흡으로 통일을 제대로 준비하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고상두 < 연세대 유럽정치학 교수 stko@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