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규제개혁 책임질 사람 누구 없소?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장장 일곱 시간 동안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를 두고 말들이 많다. 공식명칭은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였지만 규제개혁의 ‘끝장토론’이라 불렸다. 그러나 과연 ‘토론’이 있었는지, ‘끝장’을 보았는지, 재탕삼탕 말고 새로운 게 있었는지, 지방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기에 장시간 TV 생중계가 적절했는지,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회의는 인상적이었다. 이날 거론된 이상하거나 황당한 규제, 세상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 규제’, 암 덩어리 같은 복합규제, ‘보이지 않는’ 규제 등 각종 사례들은 방송을 지켜본 사람이나 규제로 고생한 사업자들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정책대안도 풍성했다. 영국식 ‘규제비용총량제’, 한국판 ‘레드 테이프 챌린지(Red tape challenge)’인 규제신문고, 공모방식 모니터링, 금지되지 않으면 모두 허용되는 것으로 보는 네거티브 방식 채용, 일몰제 확대, 미등록 규제 폐지 등 귀가 솔깃한 정책들이 나왔다.

이날 회의는 특히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하나는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직접 챙긴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점이다. 규제개혁은 역대 모든 정권이 시도했지만 결국 성공을 보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였다. 이번만은 다르지 않을까 기대가 생기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서약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대통령이 관료의 책임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사람이 문제이고, 관료들의 저항과 무사안일이 문제라는 얘기, 문제는 관료에 있는데 정작 관료들을 동원해서 개혁을 해야 하는 딜레마, 보이지 않는 ‘그림자’ 규제, 행정규칙 등에 숨은 미등록규제가 더 심각한데 그 배후에 관료주의가 있다는 지적 등 규제개혁의 모든 것이 총망라돼 거론됐다. 나올 만한 얘기는 다 나온 셈이다. 틀린 말은 없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새로운 건 없었다. 몰라서 못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대통령의 눈빛은 위력적이었다. 또다시 “잠깐만요”라는 질타를 받을까 각 부처 장관들은 부산을 떨며 후속조치들을 쏟아냈다. 맞다. 이젠 장관들이 움직일 차례다. 규제개혁은 정부의 정책결정 단계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물론 기존 규제를 ‘혁파’ 수준으로 개혁하는 데 우선순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책 원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제만 생기면 으레 규제를 들먹이는 규제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좀 불안하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이 친히 나섰으니 그렇게 되진 않으리라고 기대해 본다. 그러나 규제개혁이 지지부진하면 어떻게 되나. 경제활성화와 일자리창출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지게 될까.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도 미덕이지만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엔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기에 벌써부터 결말이 두렵다. 개혁을 추진하고 그 성과에 대해 책임질 기구가 필요하다는 건 누구나 공감한다. 국무총리와 규제개혁위원회라는 추진체계가 있지만 대통령을 대신해 ‘규제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 관료적 시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강력한 집행력을 갖춘 리더가 필요하다. 총리와 민간 위원장이 쌍두마차로 위원회를 이끌도록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얼마 전 사퇴한 김용담 전 규개위원장이 실토했듯이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규제완화 일변도의 편향 못지않게 기존 규제의 개혁을 강력히 이끌지 못한 것도 문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당초 회의 일정을 취소하면서까지 직접 챙기고 나섰겠는가. 문제는 대통령이 나서는 바람에 공식기구인 규개위의 역할이 무색하게 돼 버렸다는 데 있다. 만기친람(萬機親覽)이 걱정되는 또 다른 대목이다.

규제개혁은 긴 호흡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끈기 있게 승부를 보아야 할 지난한 과제다. 대통령의 출동, 밴드왜건 효과는 한 번으로 족하다. 규개위원장을 잘 뽑고 확실하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거기 어디 사람 없소?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