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집 앨범 '세렌디피티'로 5년 만에 돌아온 '작은 거인' 이선희 "노래 30년…이렇게 떨리기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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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강변가요제 'J에게'로 데뷔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노력
'오늘의 나' 있게 한 원동력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노력
'오늘의 나' 있게 한 원동력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그 중에 그대를 만나’)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이선희 씨(50·사진)가 25일 서울 방이동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새 앨범 ‘세렌디피티’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열창했다. 그는 “노래한 지 30년 만에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독성 강한 발라드풍 멜로디가 특유의 깊은 울림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이씨는 예전보다 화장이 약간 짙어졌지만 특유의 바지에다 재킷을 입고 등장해 세월의 흐름을 잊게 했다. 쇼케이스에 앞서 그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젯밤 잠도 못 잤어요. 가수로서 30년 동안 어떻게 자리매김을 할까 생각하며 앨범을 준비했어요. 나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음악이니까요.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머무르지 않고 늘 뭔가를 하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팬들도 그 시간을 인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5년 만에 내놓은 앨범에서 그는 수록곡 11곡 중 9곡을 작곡, 7곡을 작사해 싱어송라이터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제 삶을 노래에 담았어요. 항상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 제 곁에 있는 소중한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자 삶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죠. 가족이나 노래에 대한 것들이 그랬어요. 나이가 들면 현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답을 못 찾고 헤매는 심정도 녹여냈고요.”
그러나 그는 싱어송라이터보다는 가수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보컬이 주는 힘을 믿어요. 제가 곡을 쓰는 이유는 제 목소리를 더 잘 표현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작곡가들은 제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곡을 주지만 제게서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내고 싶습니다.”
이씨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데뷔한 뒤 1990년대 초까지 뛰어난 가창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귀여운 이미지와 보이시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그는 늘 바지와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이후 개인적으로 결혼과 이혼 등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활동이 줄었다.
그러나 2011년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 대중가수로는 세 번째로 단독 공연을 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위축되거나 겁먹지 않을 거예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데뷔 30주년을 맞은 가수 이선희 씨(50·사진)가 25일 서울 방이동 우리금융아트홀에서 새 앨범 ‘세렌디피티’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열창했다. 그는 “노래한 지 30년 만에 이렇게 떨리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독성 강한 발라드풍 멜로디가 특유의 깊은 울림으로 청중을 휘어잡았다. 이씨는 예전보다 화장이 약간 짙어졌지만 특유의 바지에다 재킷을 입고 등장해 세월의 흐름을 잊게 했다. 쇼케이스에 앞서 그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젯밤 잠도 못 잤어요. 가수로서 30년 동안 어떻게 자리매김을 할까 생각하며 앨범을 준비했어요. 나 혼자만의 음악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음악이니까요.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머무르지 않고 늘 뭔가를 하려고 했기 때문일 겁니다. 팬들도 그 시간을 인정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5년 만에 내놓은 앨범에서 그는 수록곡 11곡 중 9곡을 작곡, 7곡을 작사해 싱어송라이터로서 입지를 강화했다.
“제 삶을 노래에 담았어요. 항상 남의 것을 부러워하며 지냈는데, 어느 순간 제 곁에 있는 소중한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자 삶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죠. 가족이나 노래에 대한 것들이 그랬어요. 나이가 들면 현명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똑같이 답을 못 찾고 헤매는 심정도 녹여냈고요.”
그러나 그는 싱어송라이터보다는 가수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보컬이 주는 힘을 믿어요. 제가 곡을 쓰는 이유는 제 목소리를 더 잘 표현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작곡가들은 제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곡을 주지만 제게서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내고 싶습니다.”
이씨는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데뷔한 뒤 1990년대 초까지 뛰어난 가창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귀여운 이미지와 보이시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그는 늘 바지와 재킷을 입고 등장했다. 이후 개인적으로 결혼과 이혼 등 힘든 시기를 보내면서 활동이 줄었다.
그러나 2011년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한국 대중가수로는 세 번째로 단독 공연을 열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앞으로 어디로 갈지는 저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머물러 있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실패한다고 해도 위축되거나 겁먹지 않을 거예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