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용역보고서, 절반 그냥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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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발주해 놓고 참고만 하거나 폐기
새는 혈세 年 수백억
정책 미반영률 5년새 20%P ↑
안행부 "타당성 검토" 뒷북 대응
새는 혈세 年 수백억
정책 미반영률 5년새 20%P ↑
안행부 "타당성 검토" 뒷북 대응
![정부 용역보고서, 절반 그냥 버린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403/AA.8507913.1.jpg)
#2.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2010년 ‘산업 및 농공단지 주변지역 환경보건 예비조사’ 연구 용역을 서울의 K대학에 발주했다. 주요 산단 지역 인근의 암 발병률 등을 조사해 보건정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성서산업단지가 있는 대구의 암 진료환자가 10만명당 5018명으로, 35개 산단 중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실제 대구시의 10만명당 암 진료환자는 877명에 불과했다. 용역을 수행한 대학이 대구의 전체 암 진료환자 수인 5018명을 잘못 인용한 것이다. 용역보고서의 이 같은 오류는 8000만원의 용역비를 모두 지급한 뒤 같은해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적발됐다.
매년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되는 정부 정책연구용역사업이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이 발주한 연구용역 보고서의 절반 이상이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채 사실상 폐기되고 있다.
"前정부때 발주해서?"…3000만원 쓴 '자전거 보험' 보고서 폐기
정보 공개율은 되레 하락하면서 뒷걸음질치고 있다.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안행부의 ‘정부정책연구 종합관리시스템’(프리즘) 현황에 따르면 정부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주한 연구용역은 1만343건으로, 용역비는 6950억원에 달한다. 용역 건수는 연간 평균 2000여건이다.
하지만 연구용역 결과를 정책에 활용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 용역 결과 활용은 △법령 제·개정 △제도 개선 및 정책 반영 △정책 참조 △미등록·미활용 등 네 개로 구분된다. 이 중 실제로 정책에 활용되는 것은 ‘법령 제·개정’과 ‘제도 개선 및 정책 반영’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연구용역의 정책 미반영률은 2006년 36%에서 2012년 54.3%로 크게 증가한다. 안행부 협업행정과 관계자는 “정책 참조도 말 그대로 정책에 참조하는 데 썼기 때문에 예산을 낭비한 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2012년 감사에서 기획재정부가 발주한 정책용역 일부가 정책 참조로만 쓰여 예산을 낭비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각 부처에서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무작정 용역부터 발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발주 초기부터 해당 용역의 필요성을 철저히 검토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이전 정부에서 역점 추진하던 사업이 재검토되는 경우가 많아 용역을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박근혜 정부가 공공정보를 적극 개방하겠다는 취지로 추진하는 ‘정부 3.0’ 정책에도 불구하고 연구용역 보고서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안행부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정부 용역보고서의 미공개율은 21.6%에 달한다. 2009년 20.4%에서 박 대통령 취임 첫해인 지난해엔 29.9%로 오히려 늘었다. 퇴직 후 국책 연구기관에 취업한 공무원들에 대한 ‘전관예우’ 관행으로 수의계약 비중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안행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정부 부처가 발주한 연구용역 중 수의계약 비율은 54.5%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점이 끊임없이 지적되자 안행부는 뒤늦게 정부 연구용역 보고서의 품질 강화 및 발주 전 타당성 검토 등을 위해 전문가 20명으로 이뤄진 위원회를 이달 말부터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