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리는 한민족
20여년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업무 출장을 갔다.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를 타고 가는데 앞좌석에 30대로 보이는 젊은 미국인 부부가 생후 1년 정도 지나 보이는 머리가 까만 남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두 부부는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를 들여다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 비행기가 뜨자마자 아기가 울기 시작하는데 부부가 아무리 달래도 계속 울어대는 것이다. 부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우유도 먹여보고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치지도 않고 5~6시간을 울어대는데 민망하고 딱하다 못해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냥 두면 아기도 큰일이 날 것 같아 “내가 달래보겠으니 달라”고 하자 부부는 구세주를 만났다는 표정을 하며 나에게 아기를 안겨줬다. 나는 아기를 꼭 껴안고 가슴을 토닥이며 “아가야 자자, 고만 울고 자자! 자장자장 우리 아기…”하니까 그렇게 뻗대며 악을 쓰고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치고 편안한 모습으로 잠을 자는 것이었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눈이 동그래지며 감탄하고 두 부부는 ‘Wow! What happens?’를 연발하며 비결이 무엇이냐고(What is the solution?) 물었다.

나 스스로도 놀랐고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렇게 악착같이 울어대던 아이가 내 가슴에 안기자마자 잠들 수 있었다는 것! 그저 우리 아이들 키울 때 달래던 방법 그대로인 걸. 한국말 ‘자장자장’으로 잠을 재웠을 뿐인데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었겠는가?

그 부부에게 “Sleep Sleep, My baby, Good boy”라고 말해줬더니 부부는 ‘자장 자장’을 영어로 소리 나는 대로 종이에 적어 보물 간직하듯 하는 모습을 봤다.

그 아기는 입양아였다. 부모는 어떤 사연으로 아기를 포기했는지 모르지만 아기는 분명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말 못하는 아기지만 아마도 내 몸에서 느껴지는 고향의 체취가 평화를 안겨줬던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단군의 피를 받아 한민족이라 하지 않는가. 물론 이후 잦은 외침으로 많은 혈통이 존재하지만, 또 지금은 다문화가정이 많아져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든 타국민에 비하면 나는 그 아기가 한민족의 ‘DNA’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의심치 않는다. 그 어린 아기는 지금 얼마나 자랐을까.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때 광경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민재 <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ceo@ms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