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와의 전쟁이 궤도에 오르면서 속속 드러나는 규제의 실상이 실로 가관이다. 당사자조차 알지 못하는 엉뚱한 가시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법규정은 규제의 만물상이요, 백과사전식 규제공화국이다. 한경 기업신문고에 연일 신고, 보도되는 현장의 가시들은 규제개혁의 길이 얼마나 멀고 지난할지 잘 보여준다.

화장품을 제조·판매하려면 정신감정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왜 이런 규정이 들어갔는지 당최 알 길이 없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전문업체를 내는 데 미용사 자격증이 필수라고도 한다. 학교 앞 문방구는 탄산음료를 팔 수도 없다. 30년 경력 안경사가 간단한 시력검사조차 하지 못한다. 분야별로 끝이 없다. 손톱 밑이 아니라 온통 가시밭이다. 정작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 자는 화장품의 제조·판매자에게 정신감정을 받도록 요구한 규제주의자다. 일반병원 이름엔 질환이나 신체명을 못 넣게 하는 규제도 있다. ‘학문외과’ ‘홍문외과’라는 꼼수만 유행이다. 이런 가시행정이 사회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수많은 전문가들을 범법자로 전락시킨다.

끝장토론 후 변화의 조짐이 엿보인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각 지자체가 규제개혁추진단을 만들고, 가시행정을 발굴·개선하라는 안행부의 지침에 서울시가 앞서 부응한 것도 그런 예다. 4·5급인 책임자 지침에 서울시가 국장급을 단장으로 하고 주무과장들을 포함한 것도 주목된다. 상반기에 3502건의 등록규제를 손보겠다는 것인데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

시장경쟁을 가로막는 지자체 법규 2134건을 발굴해 철폐·개선에 나선 공정위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제한적 규제는 지방규제 가운데 빙산의 일각이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한국규제학회가 적시한 일부 차별 규제에 대해선 상위법상 근거 등을 이유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낸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나 신규입점 제한이 그런 경우다. 잘못된 것은 풀어야 마땅하다. 모든 규제가 나름의 명분은 있다. 또 근거가 전혀 없는 가시행정도 없을 것이다. 그런 규제일수록 풀어야 한다. 대부분의 규제는 목표와 방법을 오해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