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향판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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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2008년 12월30일, 광주지법 형사 2부(부장판사 이재강)는 508억여원 탈세와 100억여원 횡령 혐의로 기소된 허재호 씨(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여원을 선고했다. 벌금을 내지 않으면 일당을 2억5000만원씩 쳐서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203일만 지나면 한 푼도 안 내도 되니 그야말로 놀랄 만한 조치였다.
1년여가 지난 2010년 1월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부(부장판사 장병우)는 자수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벌금을 절반(254억여원)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은 두 배(5억원)로 올렸다. 노역 기간은 50일로 줄었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은 바로 그 사건의 개요다.
1, 2심 재판장은 모두 지역법관(鄕判·향판)으로 드러났다. 향판은 해당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판사다. 수도권 근무 선호 현상을 막으려고 2004년 ‘지역법관제’라는 명칭으로 제도화했다. 하지만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터졌다. 장병우 판사는 지금까지 광주·전남에서만 29년 일했고 올해 2월에는 광주지방법원장에 취임했다.
그 사이 허씨는 뉴질랜드로 도주해 카지노를 들락거리다 동포들의 눈에 띄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엊그제 귀국해 노역장에 들어갔는데 첫날은 밤이어서, 다음날은 주말이어서 아무 일도 않고 하루 5억원씩을 탕감받았다. 일반인 노역 일당은 5만원이다.
지난해에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100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와 대학 총장 등을 석연찮게 보석으로 풀어줬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이었던 선재성 전 수석부장판사는 2011년 자신이 맡은 법정관리 기업체 감사와 관리인에 친형과 운전기사를 밀어 넣고, 친구에게는 4개 기업의 공동관리인과 감사까지 맡겼다. 2009년 부산에서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소환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향판이 부패한 건 아니다. 1998년 대법관에 오른 조무제 부산지법원장은 30여년이나 향판을 지내고도 쟁쟁한 경판(京判·서울 법관) 선배들을 제쳐 화제를 모았다. 연고지 근무를 피하는 상피(相避)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제 고향 사람 챙기는 인사폐해 때문에 향피(鄕避)제도도 생겼다. 검찰과 국세청은 이를 시행하고 있는데 유독 법원만 거꾸로 갔다. 뒤늦게나마 허씨의 노역형을 중지시키고 벌금 전액을 강제집행하겠다고 하니 한번 두고 볼 일이다. 향판에 전관예우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1년여가 지난 2010년 1월 광주고법 항소심 재판부(부장판사 장병우)는 자수했다는 이유를 내세워 벌금을 절반(254억여원)으로 줄이고 노역 일당은 두 배(5억원)로 올렸다. 노역 기간은 50일로 줄었다.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은 바로 그 사건의 개요다.
1, 2심 재판장은 모두 지역법관(鄕判·향판)으로 드러났다. 향판은 해당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판사다. 수도권 근무 선호 현상을 막으려고 2004년 ‘지역법관제’라는 명칭으로 제도화했다. 하지만 지역 인사들과의 유착 의혹이 끊임없이 터졌다. 장병우 판사는 지금까지 광주·전남에서만 29년 일했고 올해 2월에는 광주지방법원장에 취임했다.
그 사이 허씨는 뉴질랜드로 도주해 카지노를 들락거리다 동포들의 눈에 띄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엊그제 귀국해 노역장에 들어갔는데 첫날은 밤이어서, 다음날은 주말이어서 아무 일도 않고 하루 5억원씩을 탕감받았다. 일반인 노역 일당은 5만원이다.
지난해에는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1000억원대 교비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서남대 설립자와 대학 총장 등을 석연찮게 보석으로 풀어줬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광주지법 파산부 재판장이었던 선재성 전 수석부장판사는 2011년 자신이 맡은 법정관리 기업체 감사와 관리인에 친형과 운전기사를 밀어 넣고, 친구에게는 4개 기업의 공동관리인과 감사까지 맡겼다. 2009년 부산에서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소환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향판이 부패한 건 아니다. 1998년 대법관에 오른 조무제 부산지법원장은 30여년이나 향판을 지내고도 쟁쟁한 경판(京判·서울 법관) 선배들을 제쳐 화제를 모았다. 연고지 근무를 피하는 상피(相避)제도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다. 제 고향 사람 챙기는 인사폐해 때문에 향피(鄕避)제도도 생겼다. 검찰과 국세청은 이를 시행하고 있는데 유독 법원만 거꾸로 갔다. 뒤늦게나마 허씨의 노역형을 중지시키고 벌금 전액을 강제집행하겠다고 하니 한번 두고 볼 일이다. 향판에 전관예우에…!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