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 25共感,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러웠다.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로 돌아온 가수 이승환. 때론 진지하게 때론 장난스럽게 근황을 전했다. 숨기고 싶을 만한 실패담, 자랑스러운 일화들이 이승환만의 화법으로 전개됐다. 흥미진진했다. 1989년 ‘B.C.603’으로 데뷔한 이승환은 1990년대 가요계에서 신승훈, 김건모 등과 함께 최고의 스타로 자리했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는 이승환의 곡이 가장 많이 흘렀다.

정규 앨범 11집으로 돌아 온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 사진제공=드림팩토리
정규 앨범 11집으로 돌아 온 ‘라이브의 황제’ 이승환. 사진제공=드림팩토리
“많은 분들이 제가 굉장히 잘 된다고 생각하는데 1997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이었어요. 앨범 제목 ‘폴 투 플라이’는 비상을 위한 추락이라는 뜻입니다. 제 상황과 맞물리는 거죠. 물론 체념해 있거나 답답한 상황에 놓인 여러분들을 위한 제목이기도 해요.”

이승환은 앨범마다 상당한 제작비를 들이며 양질의 사운드를 추구해왔다. 이번 앨범 ‘폴 투 플라이’는 3년간 1820시간을 들여 녹음했고, 순수 녹음 비용만 3억80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못지않게 막대한 물량을 투자한 전작 ‘드리마이저(Dreamizer)’는 어땠을까. 이승환의 말을 빌리면 비참하게 망했다. 그런데도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망각의 동물인 거죠. 제가 벼랑 끝에 섰던 것을 잊은 겁니다. 다시는 앨범 안 내려고도 생각했어요. 그런데 2년 전쯤부터 창작 의욕이 마구 샘솟아 많은 곡을 쓰게 됐죠.”

‘폴 투 플라이’에는 ‘서방님’을 히트시킨 이소은을 비롯해 팝스타 바우터 하멜, 배우 이보영, MC메타, 김예림 등 화려한 게스트들이 참여했다.

“‘비누’를 함께 노래한 김예림의 경우 그녀의 독특한 음색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인지도 덕을 보겠다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에요. 이번 앨범 피처링에서는 인지도보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뮤지션과 함께하는 것이 우선이었죠.”

양질의 사운드는 이승환에게 포기할 수 없는 요소다. 1995년 발표한 정규 4집 ‘휴먼(Human)’부터 데이비드 켐벨 등 최정상급 뮤지션들과 작업하며 국내 음반의 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폴 투 플라이’ 역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헨슨 스튜디오, 내시빌 스튜디오 등에서 정상급 연주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선배들을 보면 30대 후반까지만 인지도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전 조로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마음 먹었죠. 그래서 미국에 가서 녹음을 시도했어요. 처음엔 잘 몰라서 돈 주고도 눈치를 보곤 했어요. 우리 녹음물에 대한 냉소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우리 음악에 감탄하기도 해요. 노하우가 많이 늘었죠.”

이승환은 특히 콘서트에서는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1인자로 군림해왔다. 재작년에는 5시간45분 동안 공연하며 52곡을 소화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제 어느덧 쉰 살이 됐지만 요새도 공연을 했다 하면 기본이 3시간30분이다.

“공연이나 음반에 많은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요즘같이 미래가 불분명한 때에는 무모한 투자라고 주위에서 만류하기도 하죠. 미니앨범을 내라고도 했지만 전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자존심과 사명감이 어우러진 느낌이랄까요? 제 스스로 한 땀 한 땀 소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어요. 그런 것들이 후배들에게 밀알이 될 테니까요.”

권석정 한경텐아시아 기자 morib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