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일대에는 서호·마호·용호가 있었다. 이를
[천자칼럼] 마포8경
삼개(三浦-3개의 포구)라고도 했다. 마포(麻浦)나루의 유래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전국의 배들은 마포나루와 서강나루, 양화나루로 드나들며 온갖 물건을 실어 날랐다. 물산만 풍부한 게 아니라 풍광 또한 절경이었다. 북쪽의 산과 남쪽의 강을 배경으로 수많은 시와 그림이 탄생했다. 그 유명한 ‘마포8경’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제1경 용호제월(龍虎霽月·용산강에 비 갠 날 저녁에 뜬 달)부터 마포귀범(麻浦歸帆·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 방학어화(放鶴漁火·방학교 부근의 샛강에서 밤낚시하는 등불), 율도명사(栗島明沙·밤섬 주변의 깨끗한 백사장), 농암모연(籠岩暮煙·농바위 부근의 저녁 짓는 연기), 우산목적(牛山牧笛·와우산에서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 소리), 양진낙조(楊津落照·양화진 물빛을 붉게 적시는 낙조), 관악청람(冠岳晴嵐·맑은 날 관악산의 아지랑이)까지 이름만 들어도 시흥이 넘친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면면도 흥미롭다. 토정 이지함은 마포대교 남쪽 유수지 옆에 살았다.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이 토정동이다. 상암동은 실학의 선구자인 한백겸이 1608년 이후 살던 곳이다. 염리동 동도중고교 자리에는 흥선대원군의 만년 별장 아소당이 있었다. 신숙주의 별장 담담정도 마포 강언덕에 있었다.

지금의 망원정은 본래 세종 때의 효령대군 별장(희우정)이었다. 성종 때 월산대군이 이름을 망원정으로 바꿨는데 이곳에서 산수 간 먼 경치를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월산대군은 부드럽고 율격이 높은 문장을 많이 지었다. ‘풍악소리 놀잇배는 나루터를 건너는데/푸르고 붉은 강풀은 물가에서 자라누나’라는 시도 이곳에서 노래했다.

세월이 흘러 옛 정취가 바랜 곳도 많다. 이제는 새우젓도 없고 마포 종점도, 여의도 비행장 불빛도 사라졌다. 하지만 마포에는 옛적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여행엽서처럼 아직도 펼쳐져 있다.

어제는 영화 ‘어벤져스2’ 촬영으로 마포대교 일대가 통제되고, 구경 인파로 하루 종일 붐볐다. 우리나라 홍보와 경제효과도 크겠지만 할리우드 입장에서는 마포대교가 한국의 경제성장과 여의도 빌딩숲을 보여주는 배경일 뿐이다. 상암동이 쓰레기 매립지에서 월드컵 신화와 첨단 정보도시로 거듭났으니 그럴 법도 하다.

다만 외국 사람들이 마포대교를 영화 촬영지로만 생각한다면 조금은 아쉽지 않을까. 옛 양화진나루터, 밤섬, 삼개포구, 토정 이지함 생가터, 마포종점을 돌아보는 산책로도 곧 생긴다는데.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