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봉을 5억원 이상 받은 기업 등기임원들의 개인 연봉이 공개 시한인 어제 모두 드러났다. 선정적인 뉴스에 혈안인 언론들은 하루종일 누가 누가 많이 받나 실시간 중계하기에 바빴다. 600명이 넘는 공개 대상자들의 연봉을 마치 스포츠 랭킹처럼 줄을 세웠다. 이만큼 대중의 시선을 확 잡아끌 뉴스도 드물 것 같다. 대중은 임원들의 고액 연봉을 볼 때마다 결코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고액 연봉자들에 대한 여론재판이 기다리고 있다.

임원 연봉공개는 지난해 여야 합의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올해 처음 적용된 것이다. 부작용이 예상되지만 대중의 관심이 높은 만큼 예전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적에 비해 보상이 과도한 기업들의 연봉 인상을 자제하게 만드는 효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봉공개가 애당초 정치권이 내건 명분처럼 기업 투명성과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대중의 질시를 법제화하고 배고픔 아닌 배아픔을 한껏 부추기는 것 말고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임원 연봉공개를 통해 성과에 걸맞은 보상체계를 유도하려는 취지라면, 삼성전자는 오히려 임원 연봉을 대폭 인상해야 마땅하다. 애플에 버금가는 실적을 내면서도 임원 연봉은 애플의 8분의 1에 불과하다. 탁월한 성과는 세련된 보상체계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세계시장에서 피말리는 전쟁을 벌이는 기업들이 사회적 질투심과 관음증에 발목이 잡히게 됐다. 결국 국내에서 글로벌 인사관리가 가능한 기업은 그다지 늘어나지 않을 것 같다.

과도한 평등의식은 흔히 위화감이라는 말로 윤색된다. 법 위에는 국민정서법이 있다. 위화감과 국민정서법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정치인이다. 기업인들의 연봉을 강제로 공개함으로써 대중이 오로지 연봉의 절대금액에만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 일단 성공했다. 임원들의 피말리는 노력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국민세금으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정치혐오증을 이렇게 반기업정서로 치환하고 있다. 임원 연봉공개로 쥐꼬리만큼이라도 득을 본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정치인들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