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들이 자국에서의 세금 납부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해외에 쌓아둔 현금이 9470억 달러(약 1006조원)에 달한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넷판이 1일 보도했다.

FT는 신용평가회사 무디스의 분석보고서를 인용, 지난해 미국 회사들의 현금 보유고가 재작년보다 12%가량 늘어난 1조6400억 달러(약 1742조원)에 달했다며 이렇게 전했다.

이처럼 해외에 쌓아둔 현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정여건에도 불구하고 사업 확장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려는 미국 기업들의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FT는 분석했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을 역외에 쌓아두고 있는 것은 이를 본국으로 가져와 투자를 하거나 배당 혹은 자사주 매입 등의 형태로 사용할 경우 높은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역외 현금 보유고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기업들이 더 많은 현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쓰도록 압력을 가하는 '주주 행동주의'에 나서도록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고(故) 스티브 잡스 시절 보수적인 재정전략을 고수했던 애플은 지난해 330억 달러(약 35조원)의 현금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위해 썼지만 이런 규모의 지출은 여전히 애플의 전체적인 현금 수익보다는 200억 달러(약 21조원) 가량이 적은 금액이다.

전체 미국 기업 역외 현금 보유고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 기업 등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면세 기간을 설정해 달라는 로비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광범위한 세금제도 개혁 시도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비판적인 인사들은 기업들이 역외에 쌓아둔 현금의 많은 부분이 조세 회피의 산물이라며 장래에는 미국의 높은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편 무디스는 미국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고 수준인 8690억 달러(약 923조원)의 자금을 지출했는데도 불구하고 2007년과 비교할 때 2배가 넘는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한경닷컴 뉴스룸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