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위공무원 1천명에 '보안폰' 준 까닭?
정부가 지난주부터 중앙정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부처별로 일명 ‘보안폰’으로 불리는 스마트폰 삼성 갤럭시S3를 순차적으로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정부가 직접 공무원에게 휴대폰을 지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무용 공용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는 경찰 고위직은 지급 대상이 아니다.

안전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올해 초 국가정보원이 공무원 공용 휴대폰의 필요성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이후 국정원이 각 부처에 ‘국장급 이상부터 휴대폰을 지급하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안다”며 “일반 스마트폰과의 차이점은 모바일 문서 결재 기능이 추가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보안폰’을 지급한 이유는 보안 강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6일 법무부가 형법에 국가기밀 누설죄 조항을 넣은 이른바 ‘스파이죄’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앙정부 고위 공무원은 모두 1092명(2012년 12월 기준, 국가정보원·대통령 경호처·군인·군무원 제외). 보안폰을 이미 받았거나 지급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고위 공무원들은 대체로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 지급 지시설’이 나돌면서 일각에서는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다. 지난주 초 휴대폰을 받았다는 한 고위 공무원은 “개인 휴대폰을 통한 기밀 유출이 많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도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혹시 감청을 위한 칩이나 프로그램이 미리 설치돼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다른 부의 고위 공무원은 “지급받은 휴대폰을 즉시 개통해야 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며 “아직 개인 휴대폰의 약정이 끝나지 않은 만큼 일단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공짜로 휴대폰 준다는데 그냥 쓸 생각”이라든지 “갤럭시S5도 나왔는데 기왕이면 신제품을 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등 무덤덤한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가 직접 고위 공무원에게 휴대폰을 지급하는 일 자체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당사자들은 적잖이 당황해 하는 모습이다. 지난주 보안폰을 받았다는 또 다른 간부는 휴대폰을 따로 하나 장만했다. 사생활 감시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지급받은 보안폰에 기존에 쓰던 전화번호를 입혀 놓고는 새로 구입한 ‘폴더폰’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한물간 폴더폰이지만 스마트 기능이 없어 위치 추적 및 도·감청은 어느 정도 예방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아예 서랍 속에 넣어둔 사람도 있다. 정기적으로 충전 상태만 확인하고 기존의 휴대폰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다.

고위 공직자 사회에 불어닥친 때아닌 ‘보안 바람’을 놓고 과도한 정보 통제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고위 공직자들을 기밀 유출의 통로로 인식하는 것 아니겠느냐. 어찌됐건 또 하나의 족쇄를 찬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백승현/강경민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