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경영, 함께 1등으로] 발 맞춰 같이 달린다…더 멀리 더 높은 곳 향해
#1.충북 청주의 (주)심텍은 메모리모듈용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중견기업이다. 2000년대 후반 전 세계 PC 3대 중 1대에 심텍의 PCB가 쓰일 정도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췄다. 그러나 2010년 하반기 정보기술(IT) 시장이 급변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PC 판매량이 줄어들고 스마트폰이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PCB 수요가 확 줄어서다. 2010년 886억원이던 영업이익은 이듬해 627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위기의 순간 삼성전자가 손을 내밀었다. 삼성전자는 2011년 8월 심텍을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로 선정해 스마트폰용 얇은 PCB를 공동 개발했다. 이후 심텍은 모바일용 PCB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늘리면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

#2. 인천광역시에 있는 핸즈코퍼레이션은 자동차 바퀴용 알루미늄휠을 만드는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다. 1972년 설립 이후 알루미늄휠이란 ‘한우물’만 파왔다. 2002년 이 회사의 매출은 1148억원. 공장도 달랑 한 곳(주안공장)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10년, 핸즈코퍼레이션의 2012년 매출은 5848억원으로 5배 이상 늘었다. 현대차의 차(車)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알루미늄휠 수주 물량이 늘어난 덕분이다. 핸즈코퍼레이션은 국내 공장에 이어 중국 칭다오에도 공장을 세웠고, 금형을 제작하는 자회사도 설립했다. 작년엔 전체 직원(889명)의 절반에 가까운 431명을 새로 채용했다.

반성장이 기업경영의 화두로 등장한 지 오래다. 그러나 성공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일회성 지원으로 끝나거나 접근 방식이 잘못된 탓이다. 이를 감안해 최근 대기업들은 협력사에 중장기적으로 도움을 줄 분야에 초점을 맞추는 추세다.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주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부터 동반성장에 주력해왔다. 특히 2011년 시작한 글로벌 강소기업 프로젝트는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는 성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협력사를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운다는 계획에 따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0개 기업을 지원하는 상생 프로그램이다. 가시적 성과도 나오고 있다. 작년 삼성전자가 선정한 ‘올해의 강소기업’ 14개사의 매출 합계는 2010년 대비 1조원가량 증가했다. 이오테크닉스, 심텍 등 7개사는 해당 사업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5위 안에 들었다.

현대차의 동반성장도 좋은 결실을 맺고 있다. 현대차의 협력사 상생 프로그램 특징은 ‘해외 동반진출’이다. 미국, 중국 등 7개 해외 생산기지에 599개 협력사와 동반 진출해 있다. 해외 동반진출 과정에서 협력사들은 현대차뿐만 아니라 해외 다른 자동차 메이커를 상대로 부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따내기도 한다. 이 결과 현대차 협력사의 평균 매출은 2001년 733억원에서 2012년 2305억원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협력사들의 해외 수출액도 3조8000억원에서 30조1000억원으로 8배 가까이 증가했다. 또 2001~2012년 사이 대기업으로 성장한 협력사는 3배 늘어 139개사에 달하고, 중견기업으로 큰 협력사(109개사)도 2.9배 늘었다.

LG그룹도 △연구개발(R&D) 지원 △장비 및 부품 국산화 △사업지원 △금융지원 △협력사와의 소통 강화 등 5개 과제로 나눠 동반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SK그룹 역시 다양한 상생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의 경우 협력사들과 상생협의회를 만들어 SK텔레콤의 신규사업 참여, 기술 및 경영노하우 지원 인프라 구축 등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작년 출범한 1기 협의회에는 28개 1차 협력사가 참여했고, 올해는 45개 협력사로 상생의 폭을 넓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30대 그룹이 협력사 동반성장에 지원한 금액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8922억원에서 2011년 1조5356억원, 2012년 1조5571억원으로 늘었다. 작년 지원액은 1조6156억원이다. 또한 500대 대기업 10곳 중 5곳은 전담조직을 두고, 협력사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상생을 추진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