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故)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 부문 사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故)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신종균 삼성전자 IT·모바일 부문 사장.
[ 김민성 기자 ] '복수혈전 vs 핵전쟁'

"세기의 특허전 2라운드"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침해 2차 손해배상 소송이 글로벌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차 1심 소송에서 1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배상금을 떠안은 삼성전자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안드로이드 진영 대표주자로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1위지만 '카피캣(표절 기업)'으로 낙인 찍히면 브랜드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 배상금 액수만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의 자존심도 달려있다.

애플은 안드로이드와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창조한 구글과 대표적 제조사인 삼성전자를 함께 무너뜨릴 태세다.

애플은 2차 특허소송 증인으로 '안드로이드의 창시자'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을 지목했다. 구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도 증인 신청 목록에 올랐다. 삼성이 만든 구글의 레퍼런스폰, '갤럭시 넥서스'가 특허 침해 제품에 오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더이상 1차 소송의 '애플 대 삼성'의 구도가 아니다. '구글 대 애플' 또는 '아이오에스(iOS) vs 안드로이드' 간 핵전쟁(Thermonuclear war)이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살아 생전 안드로이드와의 핵전쟁을 늘 염두에 뒀다. 월트 아이작슨이 2011년 발간할 잡스 전기에는 잡스가 안드로이드와 법정 싸움을 시작하면서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구글 XX들(you fxxking), 아이폰을 도둑질했어. 내 숨이 다할 때까지(my last dying breath), 애플이 가진 은행 잔고 4000억 달러의 마지막 1페니까지 털어서 핵전쟁에 이기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아이작슨은 잡스 전기 발간 뒤 인터넷 매체 허핑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잡스가 평생 그토록 분노를 터트린 건 처음 봤다"고 말했다.

애플의 특허 전쟁이 단순한 배상금 목적이 아닌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한 오랜 적개심이 폭발한 전면전이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잡스는 구글을 도둑 중의 도둑, 대도(大盜)라고 봤다. 자사 운영체제인 iOS와 아이폰 기술력을 무수히 훔쳐 안드로이드를 '출산'했다며 이를 갈았다.

잡스는 생전 웹 저작 소프트웨어인 어도비 플래시도 '쓰레기'라고 치부해 아이폰 지원을 거부했다. 이미지 및 동영상을 화려하게 보여주기 좋지만 구동이 무겁고, 광고 노출에 자주 쓰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의 이같은 직선적 발언은 늘 '독선적'이란 비판을 받았다. 애플 외 다른 모바일 생태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애플이 만든 OS(iOS)가 탑재된 모바일 기기(아이폰)에서 애플이 허가한 콘텐츠(앱스토어)만 쓰는 애플 식 '완벽주의'는 '닫힌 정원(walled garden)'이란 비판에 시달렸다.

잡스의 꿈은 애플의 이상이자 철학이었다. OS-디바이스를 하나로 꿴 강력한 통제 속에 잘 가꾼 서비스와 콘텐츠가 넘쳐나는 '닫힌 정원'이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세상보다 낫다는 것. 실제 잡스는 2010년 성인용 콘텐츠 앱이 범람하는 안드로이드 마켓을 향해 "애플은 포르노를 허용할 수 없다. 포르노를 원하면 안드로이드로 가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구글은 애플과는 달리 오픈 플랫폼을 지향했다. 초기 안드로이드 마켓 시절부터 현재 플레이 스토어까지 구글은 불법 복제 등 문제가 없는 한 앱 업로드를 제한하지 않는다. 크롬 브라우저도 소스 코드를 개방해 놓고 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방성'이 구글의 기본 철학이라고 강조한다. 안드로이드와 크롬은 대표적인 개방형 서비스다. 잡스가 쓰레기라고 내던진 어도비 플래시도 안드로이드에 수용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개방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리눅스 기반이기 때문이다. 1991년 태어난 리눅스는 무료로 공개된 유닉스 기반 개인 컴퓨팅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목적에 맞게 개조해 쓸 수 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타이젠 연합의 타이젠OS도 리눅스 기반이다. 파이어폭스 및 우분투도 마찬가지. 전세계 모바일·PC 기기 제조사들이 저마다 안드로이드를 재가공해 더 많은 소비자 니즈(needs)를 충족시켜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인류 문명이 개방과 자유라는 가치를 쫓아 치열하게 진화해 온 역사와 닮았다.

2차 특허전은 철학의 싸움이다. 애플도 삼성전자에 20억 달러(2조 1000억 원)라는 천문학적 배상액을 요구하며 '판돈'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최종 목표는 애플 철학의 승리다. '모바일 혁명' 창시자라는 역사적 유일성을 확보하려는 자존심의 싸움이다.

이번 핵전쟁으로 안드로이드는 뿌리부터 치명타를 입을지 모른다. '특허 괴물'이란 애플의 주홍글씨는 더 진해질 것이다.

분명한 건 애플이 또 이긴다해도 안드로이드 진영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 점유율은 78.9%(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까지 치솟았다. 이 중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65%를 차지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 모바일도 4%까지 시장을 키웠다. 타이젠, 웹OS, 블랙베리OS, 파이어폭스OS 등으로 점유율은 이동하고, 다양성은 확대하는 추세다. iOS 점유율은 14.9%로 떨어졌다.

소비자는 다양성과 선택권을 원한다. 핵전쟁이 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소비자들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20만 개 넘게 중복되고 복잡한 모바일 관련 특허 소송으로 혁신이 중단돼선 안 된다. 승패는 시장에서 가려져야 한다"는 게 슈미트 회장의 주장이다.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트위터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