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혁신에 대한 정부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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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혁신에 대한 정부의 착각](https://img.hankyung.com/photo/201404/02.6938183.1.jpg)
보안성이 됐건 편리성이 됐건 어떤 기술이 ‘승자’로 등극할지는 마땅히 시장에서 ‘경쟁’으로 가려져야 할 문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특정 기술의 손을 들어주면 새로운 기술에 의한 혁신 기회는 그날로 날아가고 만다. 일각에서는 공인인증서가 외국 기술의 국내시장 잠식을 막는 무슨 애국의 방패막이인 양 떠들어대지만 어불성설이다. 그럴수록 한국은 더 깊은 갈라파고스의 수렁으로 빠져들 뿐이다.
“정부는 기술 중립적이어야”
정부가 특정 기술에 ‘편향성(bias)’을 갖는다는 건 그래서 위험하다. 더구나 과거와 달리 기술변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우발적 요인이 워낙 많아 기술경로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기술 편향성은 자칫 공멸을 몰고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과거의 관성을 좀체 버리지 못한다. 과거에 통했던 선택과 집중전략을 고집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상용화는 운 좋게 성공했다지만 와이브로는 실패했다. 그러나 정부는 여기서 어떠한 교훈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우리 정부다.
정부의 ‘기술영향평가’라는 것도 걱정스럽다. 말이야 미래기술의 부정적 측면에 미리 대응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그 여파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래기술을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경쟁자들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저항의 빌미도 없다.
어차피 기술영향평가의 잣대라는 것부터가 기존 패러다임을 벗어나기 어렵다. 미래기술에는 그만큼 불리할 수밖에 없고, 혁신의 기회를 제약받을 가능성만 높아진다. 정부의 섣부른 기술영향평가가 오히려 미래기술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고용창출형’ 기술로 가겠다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기술고용평가’도 마찬가지다. 말인 즉슨 고용을 창출하는 기술 쪽으로 가자는 얘기다. 그러나 고용을 잣대로 기술을 선별하자는 발상의 밑바탕에는 기술이 고용을 몰아낸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다. 도대체 지금이 18세기인지, 21세기인지 헷갈린다.
제조업 생산성 향상으로 일자리가 감소한다지만 독일 제조업이 직접고용 727만명, 간접고용 710만명으로 전체 고용의 35%를 차지하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제조업의 간접고용은 고용도 아닌가. 기술고용평가를 잘못 적용하면 자동화 등 생산성 향상 같은 기술은 아예 죄인 취급받기 딱 좋다.
일자리나 양극화는 결국 인적자원의 이동성 문제로 귀착된다. 정작 기술변화의 속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교육정책, 노동정책의 실패는 가린 채 기술과 고용을 바로 연계하는 건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극단적으로는 과거로 돌아가자는 얘기밖에 안된다.
혁신 친화적 정부이고 싶으면 정부가 혁신을 통제·관리할 수 있다는 사고부터 버려라. ‘기술 중립적’ ‘기술 개방적’ 태도야말로 혁신 친화적 정부의 출발점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