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밀어붙이기식 '정책 보험' 유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
“제대로 된 통계도 없는데 무조건 출시하라니 막막합니다.”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인 노인 전용 실손의료보험을 두고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가 전한 푸념이다.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청구되는 병원비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정부는 고령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입 대상을 늘리고 보험료도 낮춘 노인 전용 실손의료보험 출시를 독려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난감해 한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상품 개발에 필요한 노인 관련 통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금융당국은 무조건 7월 출시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발주를 받아 주문생산되는 보험이 줄을 잇고 있다. 이달 말 출시 예정인 현대해상의 ‘4대 악’ 보험도 같은 유형이다. 학교·성·가정폭력과 불량식품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새 정부의 핵심공약인 4대 악 척결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험사들에 협조를 요청했다. NH농협생명이 오는 20일 선보이는 장애인 전용 연금보험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에게 많은 연금을 주는 대신 월 보험료는 낮춰준 상품이다.
‘좋은 일’이라는 명분이 붙어있어 보험사들은 정부의 요구를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진행과정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금융당국의 정책성 보험 주문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한 접근을 통해 유용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상품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자리 잡기 힘들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대거 출시된 자전거보험이 좋은 사례다. 당시도 금융당국은 녹색경제를 살리자며 상품 출시를 압박했다. 하지만 졸속 설계 탓에 가입자 감소로 이어져 결국 보험사들의 손실만 키웠다. 10년 전 출시된 장애인 전용 ‘곰두리보험’도 지금까지 가입자가 8000명에 불과하다.
보험을 통해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더욱 더 금융당국의 업적 과시용이 돼선 안 된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
하반기에 선보일 예정인 노인 전용 실손의료보험을 두고 한 보험사 고위 관계자가 전한 푸념이다. 실손의료보험은 실제 청구되는 병원비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다. 정부는 고령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가입 대상을 늘리고 보험료도 낮춘 노인 전용 실손의료보험 출시를 독려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난감해 한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상품 개발에 필요한 노인 관련 통계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금융당국은 무조건 7월 출시를 요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발주를 받아 주문생산되는 보험이 줄을 잇고 있다. 이달 말 출시 예정인 현대해상의 ‘4대 악’ 보험도 같은 유형이다. 학교·성·가정폭력과 불량식품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금융당국은 새 정부의 핵심공약인 4대 악 척결에 동참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보험사들에 협조를 요청했다. NH농협생명이 오는 20일 선보이는 장애인 전용 연금보험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에게 많은 연금을 주는 대신 월 보험료는 낮춰준 상품이다.
‘좋은 일’이라는 명분이 붙어있어 보험사들은 정부의 요구를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진행과정을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금융당국의 정책성 보험 주문이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양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신중한 접근을 통해 유용한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상품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자리 잡기 힘들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대거 출시된 자전거보험이 좋은 사례다. 당시도 금융당국은 녹색경제를 살리자며 상품 출시를 압박했다. 하지만 졸속 설계 탓에 가입자 감소로 이어져 결국 보험사들의 손실만 키웠다. 10년 전 출시된 장애인 전용 ‘곰두리보험’도 지금까지 가입자가 8000명에 불과하다.
보험을 통해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더욱 더 금융당국의 업적 과시용이 돼선 안 된다.
김은정 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