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5조원 회사와 10조원 회사는 차원이 다르다.”

삼성 고위 관계자가 최근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 이유에 대해 설명한 말이다. 삼성이 작년 9월부터 연이어 단행 중인 사업구조조정의 키워드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확보로 풀이된다. 매출 자산 등 덩치를 키워 규모가 갖는 이점을 누리고, 돈 있는 회사와 신사업을 하는 회사를 합쳐 투자 여력을 확보해 회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합쳐서 시너지 창출

삼성, 사업구조조정 키워드는 '규모의 경제'
삼성전자의 세 축인 소비자가전(CE) 부문과 모바일&IT(IM) 부문, 반도체 부문은 1980년대 초까지는 각각 다른 회사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만들던 회사였다. 반도체는 삼성반도체가, 정보통신업은 한국전자통신이란 회사가 담당했다. 1982년 삼성은 삼성반도체와 한국전자통신을 합병해 삼성반도체통신을 만든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은 전자교환기를 팔아 큰돈을 벌고 있었는데, 이 돈을 반도체사업에 쏟아붓기 위해서였다. 그 직후인 1983년 2월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D램 사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도쿄선언’을 발표한다. 이후 반도체는 정보통신에서 벌어들인 돈을 투자해 1983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64K D램을 개발한다.

1988년 11월엔 삼성전자가 삼성반도체통신을 합병한다. 1987년 12월 취임한 이건희 회장은 “복합화되는 세상에서 반도체와 가전, 통신이 함께 있어야 시너지가 난다”며 합칠 것을 지시했다. 합병으로 삼성전자는 직원 3만8000명, 매출 3조7000억원의 국내 최대 회사로 거듭난다.

이후 반도체 부문은 1993년 메모리 세계 1위로 올라서며 캐시카우가 된다. 그 돈과 우수인력이 다른 부문으로 흘러들면서 삼성전자는 2006년 TV에서 1위, 2011년엔 휴대폰에서도 1위가 된다.

○회사 커지면 이점 많다

삼성SDI의 제일모직 합병, 삼성종합화학의 삼성석유화학 합병, 삼성에버랜드의 제일모직 패션사업 합병 등 잇따른 사업구조조정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계열사를 합쳐, 삼성전자와 같은 계열사를 만들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후계 구도를 염두에 둔 ‘교통정리’ 차원이라는 해석은 억측이라는 게 삼성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삼성SDI는 제일모직을 합병해 자산 15조원, 매출 10조원의 큰 회사가 됐다. 또 2차전지 사업이 유일하던 삼성SDI는 2차전지 분리막,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사업 등 사업을 확장하는 한편, 제일모직이 가진 1조원이 넘는 재원도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 합병도 마찬가지다. 삼성토탈 지분 50%만 갖고 있던 페이퍼컴퍼니로 별도 사업이 없던 종합화학은 삼성토탈의 기초 유화제품과 삼성석유화학의 중간제품 사업을 아우르게 됐다. 또 최근 2년간 적자를 내온 석유화학은 종합화학이 가진 8534억원의 잉여금을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사업이 합치면서 고정비 절감 등 경영합리화 효과도 크다. 지원 조직과 해외 영업조직 등을 통합해 적은 비용으로 활발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덩치가 작은 계열사들을 합하면 신사업 시너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