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은행 지점장 김모씨는 최근 거래업체 직원 두 명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고객에게 추가 대출을 권유하는 자리여서 김 지점장이 밥값 18만원을 계산했다. 계산할 때 그는 카운터에다 18만원짜리 영수증을 6만원짜리 3개로 나누는 이른바 ‘영수증 쪼개기’를 부탁했다.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를 대접할 때는 은행 준법감시인에게 보고해야 하는 은행업 감독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3만원만 넘지 말자”

지난달 1일부터 은행원이 1인당 3만원이 넘는 식사 등을 제공하거나 받을 때 준법감시인 등에게 보고토록 한 이후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3만원 초과 보고’ 사항에는 △제공 목적, 내용, 금액 △제공자 및 수령자 △제공(수령)일 등이 포함된다. 은행은 이 기록을 제공(수령)일로부터 5년간 보관한다. 자본시장법의 금융투자회사 영업업무규정(3만원 초과 이익 제공 시 준법감시인 보고)을 은행업으로 확대한 것이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지만 보고하는 것 자체가 께름칙한 은행원들은 보고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다. 1인당 3만원이 넘는 영수증을 여러 개로 나눠 가격을 낮추는 것이 대표적이다. 날짜별로 나누기도 한다. 하루 누적액이 3만원을 넘지만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참석자’로 이름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는 일도 잦다.

3만원 이하 메뉴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한다. C은행 본사 앞 한 일식집은 요즘 2만9000원짜리 정식이 가장 인기다. 보고 대상이 아니고 그나마 가장 잘 접대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실제 3만원 초과 보고 건수는 미미하다. 임직원 수가 1만명이 넘는 B은행의 준법감시인은 한 달 동안 받은 보고 건수가 100건에도 못 미친다.

○“현실성도 실효성도 없는 규제”

원칙적으로 ‘사전 보고’를 하도록 정한 것도 현실성이 없다는 게 은행원들의 말이다. 갑자기 약속이 잡힐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규정은 ‘사후에 보고할 수도 있다’고 돼 있다. C은행 관계자는 “먹다 보면 양이 모자라 좀 더 시킬 수도 있고, 술을 더 주문하는 경우도 있는데 3만원을 넘지 않게 하려니 상대방에게 불편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람을 만나 장사하는 금융업의 본질을 무시한 규제라는 목소리도 있다. 예금이든 대출이든 은행과의 거래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를 위한 은행과 고객의 교류 자체를 ‘나쁜 짓’으로 보는 금융당국의 시각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13일 한 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3만원 초과’ 규제는 현실성도 실효성도 없는 규제”라는 의견을 전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