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현지인으로 살아보기
퇴근길 정체 속에 문득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는지’ 고민에 빠지곤 한다. 분명 꿈이 있고 그걸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고 자부하지만 가끔 바쁜 일상에 치여 삶의 방향을 잃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멀리 가기 위해 잠시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방향 재정립을 위해 여행지를 물색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나의 여행들이 굉장히 심오한 일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진정한 여행 스타일은 누가 봐도 여행객으로 보이지 않게 ‘현지인으로 살아보는 것’이다. 나의 일방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삶의 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나는 열 살 때부터 화가 클로드 모네를 유독 사랑했다. 그런 내가 빈센트 반 고흐의 강렬한 색채와 격렬한 필치에 빠져들게 된 것은 박물관에 있는 작품이 아닌,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에 위치한 ‘아르’라는 작은 도시에서다. 고흐의 작품 배경이었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랑그루아 다리 주변을 산책하면서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고흐와 함께 19세기를 여행한 기분이었다. 또 프로방스의 뜨거운 햇살을 느끼며 고흐의 작품이 강렬할 수밖에 없는 나만의 이유를 찾기도 했다.

또 다른 나만의 ‘현지인으로 살아보기’는 음식문화 체험이다.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데 도움되는 것이 가격과 종류를 불문한 음식이다. 최근에는 라오스의 길거리 음식들이 나의 호기심을 무척 자극하고 있다. 1953년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라오스는 프랑스와 섞여 조화를 이룬 현지 음식들이 전 세계 관광객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 태국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정말 라오스 길거리 음식을 맛본 사람들의 칭찬은 한결같다. 지난 한 해 동안 38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한 라오스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 역시 라오스 여행을 준비 중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느끼는 설렘, 삶에 첨가된 새로운 활력소와 재충전된 삶. 그리고 지난 여행들의 추억과 꿈에 대한 열정. 현대인이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난 오늘도 ‘어디로 갈까?’ 다음 여행을 꿈꾸며 두근두근 설렌다.

조현민 < 대한항공 전무·진에어 전무 emilycho@koreanai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