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든 지 31년 만에 미국에서 석유광구 운영권을 따내는 개가를 올렸다. SK는 에너지·석유화학과 반도체·통신 등 주력 부문에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신사업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중심으로 관련 조직을 재편하는 등 최태원 회장 부재에 따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에서 원유 직접 생산

SK이노베이션은 7일 미국 자회사인 SK E&P아메리카를 통해 현지 석유 생산광구 2곳의 지분을 인수해 운영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오클라호마주에 있는 그랜트·가필드 카운티 생산광구의 지분 75%, 텍사스주의 크레인 카운티 생산광구 지분 50%를 총 3871억원에 사들였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북미 지역에서 석유개발 사업을 전담할 자회사로 SK E&P아메리카를 휴스턴에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1997년(옛 유공 시절)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의 생산광구 5곳에 지분을 투자한 적은 있지만 미국 내 석유광구 운영권을 직접 확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관계자는 “세계 3위 산유국인 미국에서 석유광구를 운영하면서 최신 기술을 배우고 사업 역량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에 따라 인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랜트·가필드 광구는 2011년부터 하루 2500배럴, 2012년 개발된 크레인 광구는 하루 750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그랜트·가필드 광구는 추가 시추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크레인 광구는 작은 규모임에도 매각회사인 KA헨리로부터 노하우를 얻어 신규 공동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인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은 세계 15개국의 생산광구 7곳, 탐사광구 15곳에서 석유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05년 루이지애나주 가스전 탐사 사업에 참여했고 2010년에는 휴스턴에 자원개발기술센터를 세워 현지 전문인력 확보에 나서는 등 미국에서 자원개발 사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원개발 사업을 제시한 최태원 회장의 경영 전략에 따라 자원 영토 확장을 추진해 왔다”며 “미국 시장에서 사업 경쟁력을 높인 뒤 셰일가스 등 비전통 자원 개발 능력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SK는 올 하반기 일본과 파라자일렌(PX) 합작 생산, 싱가포르 주롱석유화학단지 공장 가동, 스페인과 합작 윤활기유 설비 완공 등 최근 2~3년간 추진해온 신사업을 잇달아 출범시킬 계획이다. 삼성전자에서 영입한 임형규 부회장이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정보통신기술(ICT) 사업도 상반기 중으로 구체화할 전망이다.

○수펙스협의회가 신사업 주도

SK는 최근 지주사 SK(주)의 사업지원 부문을 떼어내 수펙스협의회 아래 전략위원회로 옮기고 명칭을 사업지원팀으로 바꿨다. SK(주)에서 사업지원부문장을 맡아 계열사별 신사업과 중장기 투자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온 김준 전무가 사업지원팀장으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각 계열사 이사회가 신사업과 인수합병(M&A) 등을 지주사와 협의한 뒤 수펙스협의회가 최종 조율하던 3단계 의사결정 구조는 계열사 이사회가 수펙스협의회와 직접 협의하는 2단계로 단순화됐다.

SK 관계자는 “수펙스협의회 중심의 집단의사결정 방식인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지난해 1월 출범한 이후 안착한 것으로 판단해 계열사별 투자계획과 신사업을 조정하는 역할을 지주사에서 수펙스협의회로 이관했다”고 설명했다. 총수 부재 장기화로 김창근 수펙스협의회 의장을 중심으로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할 필요가 커졌다는 얘기다.

수펙스 전략위원회는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이 맡고 있다. 하 사장은 지난달 SK하이닉스 주총에서 사내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하 사장이 그룹 차원의 투자와 신사업을 조정하는 전략위원회 위원장 역할에 더욱 전념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해영/김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