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근로시간, 규제가 능사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규제하는 법안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던 2012년 6월 근로시간 단축 관련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일본의 후생노동성과 대학연구소, 기업 등을 방문했다. 1980년대만 해도 연간 2100시간을 넘던 일본의 근로시간이 어떻게 1700시간대(2010년 1754시간)까지 떨어졌는지 그 과정을 알고 싶어서였다.

특히 일본도 우리처럼 규제 중심의 정책을 펼쳤는지가 궁금했던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의 근로시간정책 방향은 우리와는 딴판으로 기업의 경영활동을 먼저 고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노동기준법 기준은 권고용

미국 등으로부터 1980년대 중반 일본의 무역흑자가 장시간 노동을 통한 소셜덤핑에 의해 발생한 측면이 크다는 비판을 받아온 일본 정부는 1987년 곧바로 근로시간 단축에 돌입했다. 주당 48시간인 근로시간을 1997년까지 10년간 40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연장근로가 불가피해진 기업들에 일본 정부는 1998년 노동기준법 제36조(36협정)를 손질해 노사가 합의하면 정부의 권고 기준 이상으로 연장근로한도를 늘릴 수 있도록 해줬다.

노동기준법상 연장근로한도기준은 행정지도용으로만 활용될 뿐이었다. 실제로 노동기준법에는 연장근로한도가 월 45시간, 연 360시간으로 규정돼 있지만 도요타 노사는 월 90시간, 연 720시간으로 협정을 맺고 있다. 미쓰비시상사 노사도 월 58시간, 연 540시간으로 연장근로한도를 맺었고 2009년부터는 야근이 많은 부서를 대상으로 연장근로한도를 월 115시간, 연 800시간까지 확대하는 특별조건부협정까지 체결했다.

아오야마 게이코 후생노동성 노동조건정책과 조사관이 연장근로한도를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내용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연장근로한도를 법으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 근로시간 단축이 소프트랜딩하도록 노사 자율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근로시간을 바라보는 일본 정부관계자의 시각이 우리의 정치권이나 정부관계자와 어떻게 다른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사합의 땐 제한 풀어야

일본 근로자의 전체 평균근로시간은 2010년 기준 연간 1754시간이지만 제조업은 2100시간을 넘고 있고 주당 60시간 이상 일하는 장시간 근로자도 전체의 9.5%(약 500만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파트타임 비중(24%)이 늘어나고 있고 기업들도 점차 근로시간을 줄이면서 연평균 근로시간이 20여년 사이에 400시간가량 감소했다.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기본적으로 노사 자율보다는 규제를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것 같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소위의 논의 내용을 살펴보면 주당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고 노사가 합의할 경우 주 60시간 근로를 6개월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60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기업이나 6개월을 넘는 기간에 주 60시간을 가동하는 기업들은 범법자가 된다.

근로시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줄여 나가는 것에 대해선 전적으로 찬성이다. 그러나 기업의 경영활동을 압박하면서까지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다. 한국의 근로시간은 무척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노사가 합의할 경우 연장근로 한도폭을 넓혀주는 식으로 법이 개정된다면 근로시간도 줄고, 기업 피해도 거의 없는 상생의 해법을 얻을 수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한경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