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4월 국회에서 ‘페이고법(입법 발의시 재원대책도 의무화하는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국회의원 제 발등 찍는 법안”(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수석부대표)이라고 주장하는 야당의 반대를 돌려놔야 한다. 현재 새누리당이 발의한 관련 법안(이만우 의원 대표발의법, 이노근 의원 대표발의법 등)은 여당 일각에서도 ‘국회 입법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은 재정 전문가와 여야 정책위 관계자들로부터 현재 새누리당이 내놓은 페이고법이 처리되기 위해선 어떻게 수정 보완돼야 하는지,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등을 들어봤다.

['페이고'로 나라 곳간 지키자] "세금 늘리는 재원대책은 안돼…선거공약에도 페이고 도입해야"

“재원대책 법안으로 강제는 무리”

현재 나와 있는 법안 중 대표적인 ‘이만우 의원 안(案)’은 정부나 국회가 의무지출을 증가시키는 법안을 낼 때 재원조달 방안을 별도의 ‘법안’으로 제출토록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재원조달 방안만 첨부토록 하는 일반적인 페이고법보다 훨씬 강한 조치다. 전문가들은 입법권을 제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다소 과도하다는 반응이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별도의 재원조달 법안을 제출하려면 어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한지를 먼저 추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예산 항목별로 얼마 만큼 지출을 축소해야 하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우리 국회 시스템이 그 정도의 전문성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에서 강제한다면 제대로 법안을 낼 수 있는 의원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당 정책위 한 관계자도 “미국은 재정을 수반하는 법안을 낼 때 비용 조달과 관련된 입법을 완료한 뒤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이는 한국과 달리 예산 편성권한 자체를 의회가 갖고 있는 데다 전문성이 뒷받침돼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재정학자도 국내 현실 여건상 재원마련 법안 의무화는 과도한 데다 국회 내 합의 도출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따라서 비용추계서와 재원조달 계획을 의무적으로 첨부토록 하되 법안 발의 단계뿐 아니라 상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페이고 원칙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전문가들은 제시했다.

“재원마련 위한 세입증가 안돼”

재원이 소요되는 법안 제출시 부족한 재원조달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다른 예산 항목의 지출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입을 늘리는 것이다. 김영록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지출을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흔히 세수를 늘려 재정수요를 상쇄하려는 경향이 나오기 쉽지만 이는 페이고 원칙에 맞지 않다”며 “이를 막기 위해선 미국식 ‘컷고(cut-go)’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컷고’는 신규 의무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입 확보가 아닌 다른 의무지출 감액으로만 상쇄해야 한다는 조치다.

페이고법을 도입하려면 국가의 재정수지 목표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도승 목포대 교수(전 한국법제연구원 법제분석지원실장)는 “우리 정부는 성장률 전망에 따라 재정운용 계획을 짠 뒤 임의로 바꾸지만 프랑스는 정부와 정치권이 함께 중기재정목표를 정하도록 법으로 강제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정준칙을 적용한다”며 “우리도 재정수지 목표에 대한 여야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페이고는 신규 의무지출에만 적용되지만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부풀려진 기존 의무지출에 대해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선거공약, 페이고 도입해야”

‘사후관리’도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홍승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재정지출분석센터장은 “페이고를 도입해도 정치인들끼리 짜고 표와 직결되는 특정 법안에 예외조항을 두는 식으로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며 “국회에서 페이고를 지키지 않아 재정수지 목표치가 어긋났을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이중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에선 선거 공약을 내놓을 때도 페이고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건전재정포럼 한 관계자는 “법안 제출과 상임위 심사 과정뿐 아니라 선거에서 나오는 공약에도 재원 대책을 제시하도록 선거법에 강제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유권자도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해 투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종태/도병욱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