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인수 기업으로 간 대기업 인재들
지난해 말까지 제일기획 수석국장으로 일한 김유승 씨(41)는 국내 마케팅·광고업계에서 꽤나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다. 화려한 스펙(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경영대학원 졸업)과 경력(존슨앤드존슨 LG전자 제일기획)을 갖춘 데다 프라다폰과 갤럭시S 휴대폰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등 실무능력도 겸비했다.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는 올초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김씨는 MBK가 지난해 인수한 아웃도어업체 네파의 최고마케팅담당자(CMO)로 자리를 옮겼다.

PEF가 인수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CEO(최고경영자), CFO(최고재무책임자), CMO, CSO(최고전략책임자), CDO(최고개발책임자) 등 ‘고위 경영임원(C-레벨) 인력 시장’도 커지고 있다. PEF들이 유능한 인재를 스카우트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PEF가 키우는 C-레벨 인력시장

고위 경영진을 전문적으로 기업에 소개해주는 헤드헌팅회사 브리스캔영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C-레벨급 채용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이전과 비교해 2~3배가량 확대됐다. 같은 기간 국내 PEF 시장 규모(약정액 기준)는 14조6000억원에서 작년 말 44조원으로 3배나 늘었다. PEF 시장 팽창과 C-레벨급 인력시장 확대가 궤를 같이했다는 얘기다.

실제 기업을 사들인 PEF들은 거의 대부분 외부 인력 영입을 통해 경영진을 새로 꾸린다. 네파는 MBK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CEO(박창근 대표), CFO(손우익 상무), CMO(김유승 상무) 등 경영진 3명을 모두 외부에서 영입했다. 2년 전 일본계 PEF인 유니슨캐피탈이 매입한 넥스콘테크놀로지 역시 CFO(박재연 전무), COO(김창겸 전무) CHRO(최고인사책임자·김태흥 상무) 등 10여명을 스카우트했다. 박 전무는 효성그룹 전략기획본부, 김 전무는 애플 본사의 배터리 구매체인사업부, 김 상무는 삼성전자 인사팀 출신이다.

○“확실한 성과 시스템이 매력”

‘잘나가는’ 대기업의 인재들이 PEF가 인수한 기업으로 둥지를 옮기는 가장 큰 이유는 ‘확실한 보상 시스템’에 있다. PEF가 사들인 기업에 스카우트된 경영진은 기본 연봉 외에도 연간 성과 보너스, 회사 재매각에 따르는 성과급(엑시트 보너스)을 받는다.

PEF의 목표는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뒤 비싸게 되파는 것’인 만큼 회사 가치를 끌어올릴 주역인 경영진에게 막대한 인센티브를 내건다.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 선종구 전 하이마트 회장, 박병무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현 보고펀드 공동대표) 등이 PEF가 인수한 기업을 성공적으로 재매각해 수백억원대 엑시트 보너스를 챙긴 경영자로 잘 알려져 있다.

‘보험 마케팅의 귀재’로 MBK가 인수한 ING생명보험의 영업총괄부사장으로 이달 영입된 차태진 전 메트라이프 전무는 “경영진에게 자율을 부여하면서 성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보상 시스템이 PEF가 소유한 기업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유재호 브리스캔영 대표는 “MBK처럼 기업의 경영권을 사고파는 바이아웃 펀드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C-레벨 인력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