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카슨이 깬 침묵, 환경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
제2차대전이 종결되면서 전 세계는 현대 과학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다. 전후 시대는 그런 과학기술 발달에 힘입어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특히 각종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가 잇달아 제조되면서 인류는 식량 증산과 전염병 퇴치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뒀다. 합성화학물질의 대량 사용에 따르는 부작용이 일부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기는 했지만 당시 과학만능주의 세태 속에서 그런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한다는 것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1962년 레이첼 카슨(사진)이라는 한 여성 과학자가 그 누구도 감히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을 해냈다. 침묵의 봄이라는 얇은 책 한 권을 발간해 ‘기적의 화학물질’이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의 주범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고발했던 것이다.

이 책의 발간으로 사람들은 비로소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각국 정부는 서둘러 환경 전담 부서를 설치하기 시작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환경운동의 불길이 댕겨졌다. 카슨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큰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책마을] 카슨이 깬 침묵, 환경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꿨다
카슨은 침묵의 봄 발간 이전에도 20여년 동안 명성을 드날리던 과학저술가였다. 그는 실험실과 야외 현장에서 일하는 대신 수집된 자료와 보고서들을 꼼꼼히 분석해 깊은 통찰력과 유려한 필치로 야생의 동식물과 주변 환경의 실상을 정확히 세상에 알리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 자연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글 속에 풍성히 담을 수 있었던 점 또한 《침묵의 봄》 성공에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카슨은 냉전체제의 산물로 등장한 핵폭탄과 핵실험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분노했다. 그리고 DDT 등 각종 살충제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식물을 파괴하는 데 있어 핵폭탄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점을 직시해 저술을 결심한다. 책을 쓰는 수 년 동안 그는 여러 잡지에 살충제와 관련한 기사를 잇달아 게재하면서 사전홍보에 나섰다. 침묵의 봄이 발간되면 산업계와 과학계에서 쏟아질 무수한 비평과 비난을 예상하고 이에 대처하는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침묵의 봄출간 50주년을 기념해 재작년 미국에서 나온《레이첼 카슨, 환경운동의 역사이자 현재》는 500쪽이 훨씬 넘는 본문의 절반 이상을 할애해 이런 《침묵의 봄》 집필과 발간 전후의 사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 탁월한 카슨 평전의 장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가난한 시골 가정 출신 카슨이 어떻게 자연과 환경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키울 수 있었는지, 당시만 해도 흔치 않았던 미혼의 자연주의자 여성작가로서 어떻게 미묘한(?) 주변의 관심과 화해하는 일생을 보낼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비범한 저작이 어떻게 우리 인류의 운명을 바꿔 놓았는지를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다. 오는 14일 카슨의 50주기를 앞두고 국내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카슨의 삶과 유산을 통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되새기게 한다.

홍욱희 <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