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대리 수술
수술과 마취의 역사는 인류사의 연원과 비슷하다. 원시인의 유골에서 수술 흔적이 발견됐고, 기원전 이집트 파피루스에도 수술기록이 남아 있다. 현대의학의 전신마취 기술은 19세기에야 나왔지만 창세기에 이미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뒤’ 갈빗대를 취했다고 하지 않던가.

옛날부터 의사의 치유 능력은 신의 은사와 동급으로 여겨졌다. 누구나 병으로 고통받으면 의사에게 달려가 매달린다. 의사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어서 스승 사(師) 자를 붙여 부른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의료윤리는 그만큼 존엄한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이른바 사사로운 사(私)나 요사스러운 사(邪), 속일 사(詐)가 끼어드는 경우다.

1990년대 중후반에 듣도 보도 못한 ‘의사 바꿔치기 사건’이 터졌다. 비싼 특진수술비를 받은 유명 의사가 환자 마취 뒤 동료의사나 수련의에게 대신 수술을 시킨 것이다. 대학병원 의사들이 개인병원에서 몰래 수술을 해주고 거액을 챙긴 사례들도 적발됐다. 이때부터 법원이 대리 수술을 사기죄로 처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그림자 의사’의 대리 수술은 근절되지 않고 되레 늘었다. 몇 년 전부터는 성형외과 대리 수술이 성행했다. 지난해 말 여고생이 뇌사에 빠진 사건이 터지자 그동안의 의혹들이 하나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엔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초보 의사나 비전문의가 대리 수술을 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환자에게 대량의 수면마취제를 투여한 사례가 드러났다. 20년 동안 쓸 마취제를 의사 한 명이 1년 만에 쓴 경우도 있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1400여명인데 8000~9000명이 수술에 뛰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3월 여대생이 숨진 사건도 성형 전문의가 아닌 사람의 집도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간호사가 수술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한국의 성형수술 실적은 인구 1000명당 13.5건으로 세계 1위다. 우수한 의료진 덕분에 수술 실력도 세계 최고로 이름이 나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구조라면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 몰려오던 성형 관광객까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눈앞의 탐욕 때문에 생존 기반까지 걷어찬 격이다.

엇비슷한 성형얼굴들을 ‘의란성 쌍둥이’라고 부르는 웃지 못할 세태도 그렇지만, 최소한의 의료윤리나 직업윤리마저 내팽개친 일부 ‘성괴 의사’들의 부끄러운 탐욕이 더 큰 문제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나서 다음주 토론회를 열 모양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