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회층을 지나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자연과 시간이 빚은 풍경
폐허 안에서 꿈꾸는 시간
터키 서쪽 이즈미르 지방 남서쪽의 에페소는 이오니아의 고대도시다. 에게해에 면한 고대 그리스의 식민도시였던 이곳은 초기 그리스 문화가 번성했으며 기원전 600년 경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페르시아가 도시를 점령한 동안 잠시 쇠퇴했다가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한 후 다시 부흥기를 맞았고 헬레니즘 문화와 로마 문화가 차례로 꽃을 피웠다. 항구 무역의 중심이자 소아시아 지역의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인 만큼 로마시대 유적이 가장 잘 보전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에페소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중요한 업적을 세운 곳이다. 사도 바울은 기원후 전도 여행 당시 이곳에 머물며 교회를 세웠다. 로마로 거처를 옮겨 선교하던 바울은 감옥에 갇히게 됐고 이때 에페소에 옥중 서신을 보낸 것이 신약의 에베소서다. 바울이 죽은 후에는 요한이 에페소에서 성모 마리아를 돌보며 선교 활동을 이어갔다.
에페소 중앙로인 크레테스 거리를 따라 걸었다. 길 양옆으로는 니케아 여신의 동상, 소극장인 오데온, 공동 목욕탕과 화장실, 시민광장인 아고라, 트라이아누스 황제의 분수대와 사창가까지 볼거리와 공부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빛나는 유적, 놓치지 마세요.
그중에서도 단연 눈여겨봐야 할 유적은 아르테미스 신전 터, 켈수스도서관, 원형 대극장이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BC 8세기 경에 세워진 이오니아 양식의 신전으로 크기나 명성에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능가한다.
켈수스 도서관은 로마시대 아시아주의 총독이자 애서가로 알려진 켈수스 폴레마이아누스를 위해 그의 아들이 세웠다. 중앙 게이트 지하에 아버지의 무덤을 두고, 각 층에 코린트 양식의 기둥을 8개씩 세워 2층 건물을 만들었다. 대략 1만2000권의 파피루스가 소장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아름다운 도서관은 에페소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돼 있으며 건축 양식과 공간 배치가 아름다워 에페소의 백미로 평가된다.
에페소를 나와 왼편으로 뻗은 내리막을 걷다 보면 만나는 곳이 원형 대극장이다. 지름 135m, 높이 38m, 약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곳은 초기에는 문화예술 공연의 현장으로, 로마시대의 그리스도교 박해 시기에는 기독교인들을 몰아넣고 검투 경기와 사자 경기를 치르는 곳으로 사용했다. 독특한 건축 방식으로 소리들이 해풍을 타고 쩌렁쩌렁 울리는 원형극장 안, 누군가의 비명과 사자의 포효가 가득했을 순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파묵칼레, 자연이 빚은 따뜻한 위로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주에 있는 석회붕인 파묵칼레의 첫인상은 맑고 청아했다. 다랑이 논처럼 형성된 흰 석회층 위로 에메랄드빛 온천탕이 옹기종기 모였고 전면에는 해가 뉘엿거리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그림 내지는 아름다운 영화 속 한 장면을 마주한 느낌이다.
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창백한 석회암에 갇힌 푸른 물빛이 무척 차가워 보이지만 막상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면 겨울날의 이불 속처럼 따뜻하다. 예전에는 탈의 후 목욕이 가능했지만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후로는 발만 담글 수 있다.
맨발로 서서 보는 풍경은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워서 초현실처럼 느껴진다. 터키어로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이라는 뜻이다. 목화가 많이 나는 곳인 파묵칼레는 염색 과정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인류 최초로 안약이 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파묵칼레 곁에는 히에라 폴리스라는 고대도시가 있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국가를 소아시아의 고대왕국인 페르가몬이 재건한 것으로 초대 왕비의 이름을 따라 히에라 폴리스라고 지었다. 히에라는 당시 내조, 존중, 사랑의 아이콘이었다. 아늑하고 따뜻한 땅 파묵칼레와 어울리는 이름이다. 1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원형극장 꼭대기에 서서 노을에 물든 파묵칼레를 내려다보았다. 풍경에 취한 마음이 스르르 녹는 느낌이다.
여행 팁
언어는 터키어를 사용한다. 에페소나 파묵칼레에서는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 외에는 영어 소통이 불편하다. 화폐는 터키 리라를 사용한다. 주요 관광지에선 유로나 달러, 신용카드 등도 사용할 수 있다. 이스탄불에서 에페소가 있는 이즈미르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이스탄불에서 항공기를 경유하거나, 자동차를 빌려 타고 느긋하게 터키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12시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터키 렌터카 비용은 한국 돈으로 하루 5만원 정도. 인천에서 파묵칼레가 있는 데니즐리까지는 터키항공이 직항 편을 운항한다.
에페소(터키)=문유선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