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도 객석도 배우도 ‘소화 불량’에 걸린 듯했다. 예술의전당 제작으로 서울 서초동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고 있는 연극 ‘메피스토’는 쉽지 않은 무대였다. 난해하고 심오하기로 유명하고 무대화하기 까다로운 괴테의 ‘파우스트’가 원작인 탓일까.

악마 메피스토의 첫 대사로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당황했다. 육성이 아닌 스피커를 통해 소리가 전달돼 누가 어디서 말하는지 찾을 수 없어서다. 다른 배우는 몰라도 지난해 ‘단테의 신곡’에 이어 이번 공연에서도 무선 마이크를 붙이고 연기하는 정동환(파우스트 역)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그의 뛰어난 발성과 화법이라면 육성만으로도 극장 구석구석까지 채우고, 이는 관객의 몰입도를 훨씬 높여줬을 텐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가 ‘영혼 계약’을 맺기까지 예정된 상연 시간(100분)의 절반가량이 흘렀다. 둘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남은 시간에 어떻게 소화할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은 원작의 많은 에피소드 중 ‘그레첸의 비극’만 무대화한다. 그마저도 서사가 불친절하다.

젊어진 파우스트와 순진한 처녀 그레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무대언어로 보여준다. 화려하고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가 인상적이지만 원작을 모른다면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을 듯싶었다.

그리고는 벌써 ‘게임 종료’다. 메피스토는 정욕에 빠져 그레첸을 파탄에 몰고간 파우스트를 서둘러 관에 쑤셔넣고 의기양양하다 신이 그를 빼 가자 절규한다. “내가 그에게 달라붙었습니까, 아니면 그가 나를 불러들였습니까?”

실컷 유혹해 놓고는 이제 와서 무슨 소리일까. ‘내 안의 또 다른 나’인 메피스토적인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였지만 동어반복처럼 들렸다. ‘노력하고 방황하는 인간 파우스트’의 고민과 방황이 이렇게 쉽고 간단하게 끝날 문제였던가. ‘또 다른 나’를 ‘제3자’로 등장시키는 상투적이고 흔한 미스터리 심리극처럼 끝나도 되는 걸까. 참으로 초라하고 작아진 ‘파우스트’다.

메피스토 역의 젊은 여배우 전미도는 팔색조 연기를 보여주며 그야말로 ‘열연’한다. 하지만 ‘명연’이라고 할 수 없다. 신과 맞짱 뜨거나 파우스트를 농락하기에는 공력이 부족해 보였다. 공연은 오는 19일까지, 3만~5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