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생물자원 전쟁
인도의 멀구슬나무 님(neem)은 불교 경전에도 등장하는 ‘축복받은 나무’다. 인도에선 예부터 구충제, 살충제였고 가려움증, 아토피를 순화시키는 데도 유용하게 이용해왔다. ‘마을의 약방’이란 별명도 있다. 그러다 1995년 미국 화학기업 그레이스가 님나무에서 추출한 기름으로 생물농약을 만들어 특허를 취득했다. 생각해 보자. 이 농약은 인도인의 소유인가, 개발회사의 소유인가.

인도 생태운동가 반다나 시바는 이를 ‘생물해적질(bio-piracy)’이라고 맹비난해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선진국 기업들이 제3세계 생물자원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전해내려온 이용법은 무시되고 연구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개발해야만 특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국 특허가 취소됐고, 유엔은 님나무를 화학비료 숙제를 풀 ‘21세기 나무’로 지정했다.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신종플루의 공인 치료제인 스위스 로슈의 타미플루는 중국의 관목인 팔각의 열매에서 추출한 천연물질이 주원료다. 독일 바이엘은 케냐 루이루호수의 변종 박테리아로 만든 당뇨병 치료제 글루코베이의 특허를 냈다. 일본 시세이도는 인도네시아 자생식물인 자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51종의 화장품 원료 특허를 출원했다. 신물질을 찾는 유전자 사냥꾼(gene hunter)이 오지를 누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제3세계 국가들이 생물자원에 눈을 뜨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하자원처럼 생물자원도 소유권이 있고, 이를 통한 이익은 해당국과 공유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운 것이다. 1992년 생물다양성 국제협약(CBD)이 태동했고, 2010년 10차 CBD 총회 때 생물자원의 이익공유 지침인 나고야의정서가 긴 논란 끝에 합의됐다. 올 10월 평창에서 열릴 12차 CBD 총회에 앞서 발효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생물자원은 ‘그린 골드(green gold)’로 불린다. 이를 이용한 의약 종자 화장품 등의 세계시장이 800조원에 이른다. 생물자원 전쟁의 시대다. 문제는 한국이 생물자원 빈국이란 점이다. 생물 유전자원의 70%를 수입하면서 로열티를 내고 해당국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관련 기업들은 연간 5000억원을 더 물게 생겼다.

북한산에서 채집된 씨앗이 미스김라일락으로 둔갑해 수입되고 있다. 외환위기 때는 급한 김에 종자회사를 다 팔아치우는 우를 범했다. 식탁에 오르는 고추 딸기 파프리카 토마토 등은 하나같이 해외에 로열티로 주고 재배하는 것들이다. 무지의 대가는 너무 크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