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베이앙의 건축가 시리즈 '르 코르비지에'.
자비에 베이앙의 건축가 시리즈 '르 코르비지에'.
차가운 공학적 언어로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영역에 도전하는 두 개의 전시회가 주목을 끌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고 있는 프랑스 작가 자비에 베이앙의 개인전 ‘신체들(Bodies)’과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영국 미디어아트그룹 트로이카의 ‘소리, 빛, 시간-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전이다.

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베이앙은 형상을 잘게 쪼개고 다시 결합하는 독특한 조각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겉보기에 서양의 사실적 조각 전통을 계승한 것 같은 그의 작품은 컴퓨터 등 첨단장비와 공학적 프로세스로 만든 것이다. 그는 누드상을 제작하기 위해 인물을 3차원(3D)으로 스캔한 후 알루미늄, 브론즈, 폴리우레탄 등의 소재로 재현한다.

그는 특정 인물의 개성을 제거하고 형상을 해체해 추상적이면서도 단순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카산드라’는 그 대표적인 예. 상체를 가로로 절단하고 조합해 현대적 세련미를 풍긴다. 2009년 베르사유 개인전 이후 꾸준히 작업해 온 건축가 시리즈 ‘모빌(르 코르비지에)’도 선보인다. 20세기 초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비지에를 조각한 것으로 공중에 매달린 푸른색 구형의 모빌과 상호 교감한다. 5월24일까지. (02)3446-3137

주로 제작 과정에서 기술을 접목하는 베이앙과 달리 트로이카의 작업은 최종적인 형태마저 기계적이다. 그러나 그 기계적인 형태가 퇴화한 현대인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는 게 놀랍다.

독일 여성 작가 코니 프리어와 에바 루키, 프랑스 출신의 세바스티앙 노엘 등 영국 왕립미술학교에서 만난 이 3인조는 냉철한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시각적·공간적 체험을 결합해 새로운 감성의 문을 두드린다. 이들은 소리, 빛, 시간으로 구성된 상상의 공간에서 자연 현상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2010 디자인 마이애미에서 화제를 모은 스와로브스키(Swarovski)와의 협업작품 ‘폴링 라이트’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차가운 기계적 빛이 전시실 바닥에 아름다운 수파를 만들어내 관객에게 수면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한 경험을 제공한다. 10월12일까지. (02)720-0667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