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몸짓…세계는 그녀에 빠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날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했어요. ‘희야, 너 정말 대단하다. 수고했어’라고요. 전설적인 예술가들이 섰던 마린스키극장 무대에 서게 되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인 서희 씨(28)가 지난 1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 무대에 섰다. 제14회 ‘마린스키 국제발레축제’에서 그는 마린스키발레단과 ‘지젤’을 공연했다. 매년 열리는 이 축제는 세계 최정상 발레 무용수들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행사다. 15일 전화통화에서 그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마린스키극장은 발레 무용수에겐 꿈의 무대로 꼽힌다. 1783년 개관한 극장의 역사는 러시아 고전 발레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라이몬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등 수많은 명작 발레가 여기서 초연됐고, 올해로 231번째 공연 시즌을 맞는다.

“지난해 유리 파테예프 마린스키 발레단 예술감독이 미국 워싱턴에 와서 제 공연을 보시곤 같이 공연하자고 했어요. 그땐 ABT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또 함께할 수 있느냐고 연락이 온 거죠. 시간이 촉박했지만 마침 러시아에 가기 전 미국에서 ‘지젤’을 했던 터라 공연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무대에 선 기분이 궁금했다. “‘어떡하지’ 하고 떨린 게 아니라 ‘나는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맞는 일을 한다는 느낌이랄까. 말이 통하지 않는 무용수들과 공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모든 스태프들이 진심으로 도와줘서 잘 끝났어요.”

서희의 ‘지젤’ 티켓 3000여장은 순식간에 팔렸다. “제 공연뿐 아니라 축제기간 내내 3000여석의 좌석이 대부분 매진됐어요. 최근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 등의 일 때문에 시끄러웠잖아요. 그런데도 수많은 관객이 공연장을 찾아와 발레를 보는 게 정말 부러웠어요. 마린스키극장 소속인 마린스키발레단은 관람료 수입만으로도 유지된다고 하니 대단한 거죠.”

서씨에겐 올해 경사가 겹쳤다. 마린스키극장 공연에 이어 ABT가 곧 뉴욕 링컨센터에서 시작하는 봄시즌 무대에 올리는 발레 ‘신데렐라’ 프리미어 첫날 공연의 주역을 맡게 된 것. 그는 “신작 공연의 첫 무대를 장식하는 순간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며 “앞으로 ‘신데렐라’ 공연을 할 때마다 서희란 이름이 회자될 테니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