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인=피고인' 만드는 이상한 규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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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기업활동 막는 규제공화국
기업가 정신 살려 일자리 만들려면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해야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
기업가 정신 살려 일자리 만들려면
네거티브 규제방식으로 전환해야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
![[다산칼럼] '기업인=피고인' 만드는 이상한 규제들](https://img.hankyung.com/photo/201404/AA.8582737.1.jpg)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조성된 1조원 상당의 기본재산으로 재단은 매년 300억원 규모의 장학사업을 펼친다. 학교장 추천으로 선발하는 통상적 방식 대신에 ‘꼭 필요한 학생이 제대로 쓸 수 있는 장학금’을 목표로 뛰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전임 회장을 비롯해 대학 총장, 교육감 등을 역임한 이사와 감사가 무보수로 일하는데 이들 중 5인은 변호사 또는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
초·중·고 학생에게 큰돈을 한꺼번에 안겨주면 잘못 쓰일 위험이 크다. 학부모에게 전달해도 다급한 생활비로 전용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삼성꿈장학재단 멘토링 장학금은 멘토 선생님이 어려운 환경의 멘티 학생을 선정해 지도계획서를 제출하면 정밀심사를 거쳐 선발하고 장학금은 멘토 선생님 계좌로 입금시켜 학생 지도에 직접 사용하도록 운영한다. 선발심사와 사후관리가 매우 힘들지만 지원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높다.
멘토링 장학금에 공감하는 일부 기업이 기존의 자체운영 장학사업을 대신 맡아달라며 돈을 보내는 일도 생겼다. 상대방과의 대칭적 회계처리를 위해 재단은 기부금 수입으로 처리하는데 이를 ‘기부금 사기’라며 고발한 것이다. 기부금품법이 정한 모금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범죄라는 것이다.
기부금품을 받으려면 법률이 정한 예외대상 이외에는 모집금액에 따라 광역자치단체 또는 안전행정부에 등록해야 한다. 모집금품의 종류와 목표액, 모집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신청하면 확인 후 등록증을 교부한다. 소속원의 가입비 및 회비 등은 등록대상이 아니며 정당, 종교단체, 한국장학재단 등은 등록의무 제외대상으로 열거돼 있다. 위탁관리 장학금은 규제대상에 포함될 사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외대상에 열거돼 있지 않아 오해받은 것이다. 명시적 제외대상 이외에는 기부금이라는 명칭만 쓰면 등록대상인 것처럼 보이는 포지티브 방식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다. 등록대상 요건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으면 등록의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
포지티브 규제 때문에 기업은 죽을 맛이다. 오는 7월24일부터 시행되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도 간단한 조문으로 구성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다. 공정거래법 9조의 2에 포함된 3개항 중에서 1항과 3항은 용어정의와 정리시한이고 2항이 내용 전부다. 시행일 현재 지분율 범위까지의 신주배정에 의한 유상증자 이외에는 추가출자를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다.
다른 주주가 신주인수권을 포기하는 경우에도 실권주를 대신 인수할 수 없어 제3의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유상증자 길이 막힌다. 성장을 위한 투자 기회도 활용할 수 없고 결손이 생겨도 보전하기 힘들다. ‘시행일 현재의 지분율’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도 우습다. 자본조달방식이 급속히 진화해 금융회사 건전성 지표인 바젤기준도 수시로 바뀐다.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채권)으로 인해 자본과 부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자본시장 환경변화를 외면하고 보통주 지분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후진적 규제인 것이다.
순환출자 폐해를 주장하는 측의 의견을 수렴해 금지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나머지는 문제 삼지 않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현행 규정대로 시행하면 머지않아 3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라는 형사고발이 난무할 것이 뻔하다.
형사처벌을 수반하는 기업규제는 적용대상을 명확히 규정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우선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인에 대한 형사고발이 봇물을 이루는 비정상을 시급히 개선해 ‘기업가 정신’이 투자와 일자리를 이끄는 창조경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