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어제 ‘기업상장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유가증권시장 우량기업 상장심사 간소화 및 상장폐지 유예기회 확대, 코스닥시장의 분리 운영과 상장 심사기준 합리화 및 최대주주 지분매각 제한기간 단축 등이 골자다. 코넥스시장 상장 특례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상장과 상장유지 및 자금회수를 수월하게 해 기업들을 좀 더 증시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이다.

사실 기업들의 상장기피 현상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2010년 96건이었던 기업공개(IPO)는 지난해 40건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특히 중·대형 기업 주식이 주로 거래되는 유가증권시장의 IPO는 거의 고사상태다. 2010년 22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3건으로 쪼그라 들었다. 자산 5000억원이 넘는 기업 공개는 그나마 현대로템 한 건뿐이다. ‘자본시장의 출산율은 사실상 0’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상장사가 되면 보다 저렴하게 자금조달을 할 수 있는 등 이점이 많다. 그런데도 상장을 피하는 것은 각종 유·무형의 규제와 이로 인한 상장 비용이 편익을 훨씬 앞서기 때문이다. 상장사가 되면 엄격한 공시의무를 지고 대주주 의결권 제한, 사외이사 선임요건 강화, 감사위원회 의무설치 등 수많은 규제를 받게 된다. 자칫 하다가는 투기세력의 먹잇감이 되고 경영권까지 위협받기도 한다. 주가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투자자들의 항의도 빗발친다.

그런데 어제 발표된 기업상장 활성화 방안에는 상장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규제완화나 혁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상장심사 간소화와 기준 완화 같은 절차적 문제만 건드렸을 뿐, 정작 기업들이 원하는 실체적 규제완화는 손도 대지 못했다. 물론 이런 문제는 금융위나 거래소가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기업과 기업인을 적대시하고 상장사를 온갖 규제로 옥죄는 한, 증시에 기업을 상장하려는 기업은 점점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신규 상장이 없는 증시는 자본조달 기능을 못하는 죽은 시장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 증시가 그렇다. 투자부진과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원인도 자본시장의 마비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