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일자리는 안보의 영역이다
3년여 전인 2010년 7월15일,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시에서 열렸던 LG화학 전기자동차 배터리공장 착공식. 현장을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축사 한 줄 한 줄에 무게를 실었다.

“이제는 한국 대신 미국에서 미국산(Made in America)이라고 찍힌 전기차 배터리가 생산된다. 단순히 공장 하나를 세우는 게 아니라 홀랜드시와 미시간주, 미국을 위해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는 것이다.”

오바마가 방점을 찍은 ‘Made in America’와 ‘미래’에 숨어 있는 코드는 바로 일자리 유치였다. 그는 일자리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온다고 했다. 이곳에서 LG가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400여개에 불과했지만 현장까지 날아와 LG 임원들을 격려했다.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미국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니 대통령으로서 이 정도 예우는 당연한 것이라는 분위기였다.

중국이 빼가는 삼성 일자리

립서비스도 아니었다. 미국 정부는 LG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24억달러에 달하는 그린 자동차 및 배터리산업 보조금 중 6%인 1억5000만달러를 떼내 지원했다. 공장 투자자금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미시간 주정부는 법인세 감면 등 1억2500만달러를 지원했다.

다음달 초에는 삼성전자가 중국 시안에서 반도체공장 준공식을 갖는다. 반도체 연구개발(R&D)센터도 완공한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를 반드시 육성해야 할 7대 산업 중 하나로 정하고 유치한 공장이다. 유치전에서는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장이 규제를 걷어내며 직접 발로 뛰었다고 하니 미국 오바마 정부의 투자 유치 노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삼성이 10조원을 투자한 시안공장에서 만들어낼 초기 일자리는 5000여명. 증설로 이어지는 반도체공장 특성상 현지 고용창출 규모는 1만~2만명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왜 중국을 선택했는지는 한국 사정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산업단지와 택지개발지구에 부지가 걸쳐 있어 건축허가가 나지 않던 삼성전자의 화성 반도체공장 증설 문제를 지난달 민관규제개혁합동회의를 열고서야 뒤늦게 풀어줬다. 2018년까지 7조원을 투자해 증설하면 직·간접적으로 8000명의 고용 효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다. 정부가 건축 규제를 풀어주지 않기로 고수했다면 자칫 제2의 시안이 대체 투자지로 검토됐을지도 모른다.

일자리 해외 유출은 ‘죄악’

전쟁이다. 국가 간 일자리를 빼앗고 뺏기는 글로벌 전쟁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의 국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삼성이 중국에서 일자리를 만들면 중국 기업이고, LG가 미국에서 현지인들을 채용하면 미국 기업이다.

국가 경제력을 평가하는 잣대는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과 수입 규모다. 앞으로는 일자리 유치 실적과 유출 규모가 또 다른 지표가 될 수 있다. 각국 정부와 지도자의 경쟁력을 재는 척도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내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규제로 일자리를 빼앗는 것은 죄악”이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일자리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국내 일자리가 해외로 옮겨 간다면 아무리 규제개혁을 했다 한들 ‘팥소 빠진 찐빵’이다.

김홍열 경제부 차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