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하며 미술계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2년 뒤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그는 생전에 전통미술에서 이탈한 현대미술은 불안감을 동반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약 중독적 묘미가 있다”고 주장한 아방가르드였다. “미술이란 기존의 사물의 의미와 감각의 영역 사이에 펼쳐져 있는 광대하고도 끝없는 틈을 거꾸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2011년 ‘개념의 여정’에 이은 두 번째 유작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미공개 작품을 포함해 설치, 회화, 조각, 비디오 등 40여점을 선보인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박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들로부터 박이소로 개명한 이후의 작품까지 주요작품이 망라됐다. 일부 설치작품은 특정 장소에 설치했던 상황을 재현하기 어려워 드로잉으로 대체했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전시의 타이틀이 된 작품 ‘섬싱 포 나싱’이다. 각목과 비닐을 사용해 만든 통로를 따라가면 막다른 공간에 도달하는데 바닥에는 개가 그릇에 담긴 물을 먹어대는 비디오 영상이 끝없이 반복된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현대 예술가의 갈증을 상징한다. 안과 밖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싸구려 투명 비닐제 통로, 벽을 향해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선풍기 역시 무질서와 혼돈, 불연속의 우연 등 세상사와 예술창작의 한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와 때맞춰 5월 중 드로잉북과 작가의 유고를 모은 앤솔러지도 출간된다. (02)739-7067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