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사생환 기다리겠습니다 > 대한적십자사 강원도지사 건물 앞에 18일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여객선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 무사생환 기다리겠습니다 > 대한적십자사 강원도지사 건물 앞에 18일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여객선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수많은 ‘만약’이 속절없는 한숨으로 이어진다. 만약 승무원 교육이 정상적으로만 이뤄졌더라면, 만약 정부의 대응이 조금만이라도 신속했더라면…. 민낯으로 드러난 어이없는 자화상에 대한민국은 탈기했다. 가늠할 길 없는 슬픔은 이미 위로의 영역 밖이다.

어쩌다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허물어졌나. 반성에 예외는 없다. 이 땅에서 어른으로 살아가는 자, 모두의 몫이다. 차가운 바닷속. 우리 아이들의 가녀린 생명은 지금 그곳에 있다.

[세월호 침몰 대참사] "조난당한 것은 세월호 아닌 대한민국…이런 어른이라 미안하다"
18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기성세대의 회한과 반성의 글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적었다. “조난당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다.” 정부의 구난시스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담당 부처인 안전행정부는 사고 수습에 철저히 무능했다. 세월호 사고 소식이 알려진 16일. 첫 브리핑을 통해 “368명이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두 시간여 만에 “집계 착오”라고 말을 뒤집었다. ‘Hurphist’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은 트위터를 통해 “적어도 조난 이후 대응에서 정부는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의 극한을 보여줬다”고 질타했다.

사회 전반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까? 어른들 지시에 따라 모범생같이 구명조끼 입고 배 안에서 겁에 떨며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니 돌아버리겠다. 어른들에 대한 ‘신뢰’가 생기려면 어른들이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썼다.

기성세대의 무력함에 대한 한탄도 줄을 이었다. 조정민 목사(전 MBC 앵커)는 페이스북에 “이제 이만하면 살 만한 나라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고, 꽃망울 같은 아이들이 스러지는데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 부끄러운 시간이다”라고 적었다. 노상범 OKJSP 대표는 “이런 나라의 어른이라서 너무나도 미안하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그냥 눈물이 난다”는 글을 올렸다.

정치인들의 생각없는 행동에 대한 질타도 매서웠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고 현장에 얼굴 한번 비치겠다고 찾아나선 정치인들의 무신경에 국민은 분노했다. ‘동업자들’조차도 고개를 돌렸다. 노회찬 전 정의당 대표는 트위터에 “산소통 메고 구조활동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치인, 후보들의 현장 방문 및 경비함 승선은 자제해야 합니다. 중앙재난본부 방문으로 또 하나의 재난을 안기지 맙시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 하루 동안에만 50명이 넘는 정치인이 세월호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언론을 향한 비난의 화살도 따가웠다. 특히 무분별한 방송 보도에 대한 불만이 컸다. 개그맨 남희석은 “속보 전하려는 욕심에 상황 안 가리고 달려드는 카메라와 앵커의 황당하고 잔인한 질문들이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가족들 생각해서 정확한 정보 아니면 속보 신중히 발표하길…”이라는 글을 트위터에 달았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은 “이 와중에 물이라도 만난 듯 저열한 보도 쏟아내는 일명 ‘언론’들, 경멸을 넘어 절망스럽다”고 꼬집었다. 이런 비난은 언론의 반성문으로 이어졌다. 한국기자협회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일부 기자들의 섣부르고 경솔한 행동이 희생자 가족은 물론 국민 여러분에게 큰 상처를 줬다는 비판과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반성했다.

세월호의 안일한 선박 운항 관행도 도마에 올랐다. “안전사고에 대한 매뉴얼도 없고 평소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승무원들이 사고 시 안전대책을 잘 준비해 놓기만 했어도 참사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 “배가 쓰러지는 와중에 선장이 학생들에게는 배에 가만 있으라고 하고는 본인만 도망가서 가만히 있던 학생들이 대부분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기관사가 문을 잠그고 열쇠를 가지고 도망가는 바람에 승객이 모두 화재로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대구 지하철 사고와 어찌 그리 판박이인지.”(허진호 전 인터넷협회 회장)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위해 진지하고 성숙한 자기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도드라졌다. 40대 여성 직장인은 “빨리빨리 대충 문화와 허술한 사회안전 시스템, 매뉴얼도 지키지 않는 낮은 시민의식을 생명과 안전 최우선, 철저한 준법과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바꿔야만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