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문가와 권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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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2001년 뉴욕 9·11 테러 때 현장 지휘자는 관할 소방서장이었다. 직위가 높은 뉴욕시장은 그의 지휘에 따라 모든 지원 업무를 조정하는 조력자 역할을 했다.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때의 총지휘부는 런던 경시청이었다. 2011년 빈 라덴 제거 작전회의 때 중앙에는 실무자가 앉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2009년 뉴욕 허드슨강에 승객 150명을 태운 여객기가 불시착했을 때도 그랬다. 뉴욕항만청장은 주정부나 연방재난관리청에 보고하는 것보다 구조요원을 먼저 투입해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미국 재난대응시스템(NIMS)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으로 이뤄진다.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중앙 관련부처들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도 미국의 NIMS를 모델로 했다. 매뉴얼 역시 3000여가지나 정리돼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우왕좌왕할까. 현장을 잘 알고 통제하는 재난방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행정직이 사고대책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노란 옷만 입고 하는 게 뭐냐”는 비난만 받는다. 정작 현장 지휘관에게 지휘가 아니라 ‘보고’를 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진다.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간 총리는 물세례를 받고 쫓겨났다. 해양경찰청장도 야유와 욕설을 받았다. 천안함 침몰 때 군 관계자들이 멱살을 잡히고 내동댕이쳐진 것과 똑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초기 상황 보고가 오락가락해서 불신을 자초했다. 선진국은 이 사람, 저 사람이 함부로 정보를 내보내지 않도록 통제하는데 우린 그게 안 된다.
실질적인 결정권은 현장을 가장 잘 알고 가용자원이 뭔지 판단할 줄 아는 지휘관이 가져야 한다. 이번 경우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나 목포해양경찰서장이 현장을 통제하는 게 맞다. 사실 총리나 장관이 가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오히려 방해되는 게 많다. 그러니 무슨 일만 터지면 ‘대통령 나와라’라고 외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관료주의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문가 대신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권력가를 믿는 게 근본 원인이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가서 후속 조치까지 전화로 일일이 확인하며 같이 우는데 유가족들이 “속 터진다”며 청와대로 가겠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고 비통하지만, 위기 상황일수록 대처는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설령 대통령이라도 현장 지휘자의 결정에 따르는 게 옳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2009년 뉴욕 허드슨강에 승객 150명을 태운 여객기가 불시착했을 때도 그랬다. 뉴욕항만청장은 주정부나 연방재난관리청에 보고하는 것보다 구조요원을 먼저 투입해 ‘허드슨강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미국 재난대응시스템(NIMS)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으로 이뤄진다. 현장 책임자에게 책임과 권한을 주고 중앙 관련부처들은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도 미국의 NIMS를 모델로 했다. 매뉴얼 역시 3000여가지나 정리돼 있다. 그런데 왜 이토록 우왕좌왕할까. 현장을 잘 알고 통제하는 재난방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행정직이 사고대책을 지휘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컨트롤타워가 없으니 “노란 옷만 입고 하는 게 뭐냐”는 비난만 받는다. 정작 현장 지휘관에게 지휘가 아니라 ‘보고’를 하라고 다그치는 바람에 문제가 더 커진다.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간 총리는 물세례를 받고 쫓겨났다. 해양경찰청장도 야유와 욕설을 받았다. 천안함 침몰 때 군 관계자들이 멱살을 잡히고 내동댕이쳐진 것과 똑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초기 상황 보고가 오락가락해서 불신을 자초했다. 선진국은 이 사람, 저 사람이 함부로 정보를 내보내지 않도록 통제하는데 우린 그게 안 된다.
실질적인 결정권은 현장을 가장 잘 알고 가용자원이 뭔지 판단할 줄 아는 지휘관이 가져야 한다. 이번 경우엔 서해지방해양경찰청장이나 목포해양경찰서장이 현장을 통제하는 게 맞다. 사실 총리나 장관이 가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오히려 방해되는 게 많다. 그러니 무슨 일만 터지면 ‘대통령 나와라’라고 외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관료주의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전문가 대신에 강력한 힘을 발휘할 권력가를 믿는 게 근본 원인이다.
대통령이 현장으로 달려가서 후속 조치까지 전화로 일일이 확인하며 같이 우는데 유가족들이 “속 터진다”며 청와대로 가겠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고 비통하지만, 위기 상황일수록 대처는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 설령 대통령이라도 현장 지휘자의 결정에 따르는 게 옳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