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 쿠차가 2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 하버타운 골프링크스의 18번홀 그린 앞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이 그대로 홀인돼 버디가 되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맷 쿠차가 2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 하버타운 골프링크스의 18번홀 그린 앞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이 그대로 홀인돼 버디가 되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7번홀(파3) 1.2m 거리에서 3퍼트 보기를 한 맷 쿠차(미국)는 루크 도널드(영국)와 공동 선두가 됐다. 18번홀(파4)로 이동하는 동안 쿠차는 “충격으로 인해 정신이 멍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머리엔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지막홀만 오면 정신이 없었다. 최근 6개 대회 최종라운드 18번홀 스코어가 4오버파에 그쳤다.

○마지막홀 20m 벙커샷 버디로 역전

맷 쿠차 100만弗짜리 벙커샷 '마술'
미국 PGA투어 RBC헤리티지(총상금 620만달러) 최종라운드가 열린 21일(한국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헤드 하버타운 골프링크스(파71)의 18번홀(파4·472야드)은 버디가 잘 나오지 않는 어려운 홀이다. 티샷을 페어웨이에 떨군 쿠차는 바다에서 강한 맞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가운데 175야드 지점에서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했다. 볼은 홀에서 20m가량 떨어진 그린 앞 벙커로 들어갔다. 쿠차는 캐디에게 “벙커샷을 집어넣고야 말겠다”고 말했다.

쿠차가 벙커샷한 볼은 힘차게 솟아올라 그린에 떨어진 뒤 구르더니 홀 속으로 사라졌다. 극적인 ‘위닝샷 한 방’이었다. 이날 선두 도널드에 4타 뒤진 공동 7위로 출발한 쿠차는 전반에서만 6타를 줄이고 후반에 1타를 더 줄여 7언더파 64타를 몰아쳤다. 최종합계 11언더파 273타로 도널드에 1타 차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통산 7승째다. 우승상금은 104만4000달러.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 놓쳐

쿠차는 지난달 30일 텍사스오픈 최종라운드에서 3오버파 75타를 쳐 스티븐 보디치(미국)에 2타 뒤진 준우승에 그쳤다. 바로 1주일 뒤 열린 휴스턴오픈에서 쿠차는 4타 차 선두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했다. 17번홀까지 1타 차 선두였다. 그러나 18번홀(파4)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 왼쪽 워터해저드에 빠지면서 보기를 기록, 맷 존스(미국)에게 연장을 허용했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존스가 40m 칩인 버디를 낚으면서 쿠차는 다 잡은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주 마스터스에서는 마지막날 공동 선두였다가 4번홀에서 뼈아픈 4퍼트를 하면서 더블 보기를 범해 결국 공동 5위로 미끄러졌다.

최근 3개 대회 연속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은 쿠차는 마스터스 직후 열려 대다수 톱랭커가 불참하는 이 대회를 건너뛰지 않고 출전을 강행했다. 쿠차는 “샷 감각이 좋아 상승세를 이어가고 싶었다”며 “다시 찾아온 우승 기회를 갖게 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골프 대신 월스트리트 근무 유혹

쿠차는 골프 외에도 테니스, 탁구, 수영 등에서 빼어난 실력을 갖춘 만능 운동선수였다. 플로리다주 테니스 대표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보리스 베커(독일) 같은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플로리다주 주니어랭킹 5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테니스의 전설 앤드리 애거시(미국)가 치는 걸 보고 골프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쿠차는 “애거시가 동네 클럽을 방문해 클리닉을 진행하면서 드롭샷을 구사했는데 네트를 넘어간 공이 한 번 튀더니 스핀을 먹고 다시 코트로 되돌아 넘어오는 것을 보고 테니스보다 골프가 훨씬 쉬워 보였다”고 설명했다.

조지아텍대 골프팀 선수였던 그는 졸업 후 9개월간 투자은행에서 근무하면서 골프를 접을 생각도 했다. 그는 골프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투자은행의 연봉이 많아 월스트리트에서 근무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며 “스폰서 추천으로 2000년 텍사스오픈에 나가 커트 탈락하면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골프로 방향을 틀었다”고 말했다.

쿠차는 “‘오늘은 내 날이 아닌가보네’ 같은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게 지론이다. 그는 “안 좋은 샷과 운 나쁜 샷은 연이어 나오지만 거기에 굴복하면 안 된다”며 “포기하면 절대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재미 동포 존 허(24)는 합계 9언더파로 벤 마틴(미국)과 공동 3위에 올랐다. 존허는 컴퓨터 같은 아이언샷을 선보이며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최경주(44·SK텔레콤)는 2타를 잃고 합계 이븐파 공동 31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