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2월27일 남아프리카로 향하던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Birkenhead)호가 케이프타운 해역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했다. 600여명이 타고 있었지만 구명보트는 단 3척뿐. 한 척에 60명씩 총 180명만 탈 수 있었다. 병사들은 함장 지시에 따라 여자와 어린이들을 구명보트에 태웠다. 구명보트에는 약간의 자리가 남았지만 병사들은 타기를 거부했다. 보트가 휘청거려 전복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470여명의 군인은 구명보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를 했고 결국 버큰헤드호와 함께 전원 수장됐다. 버큰헤드 정신은 1859년 스코틀랜드 작가 새무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自助論)’이란 책에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에는 왜 이 같은 버큰헤드 정신이 발휘되지 않았던 것일까. 전 세계 선원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절대준칙이 유독 한국에서만 무력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압축성장에 따른 개인화의 심화가 공동체 의식의 상실로 이어지고 이것이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빠른 경제성장 이후 사회적 이동이 심해지면서 자기 직분에 충실한 것보다는 약삭빠르게 살아남는 게 더 낫다는 통념이 자리잡게 됐다는 것.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제는 직업적 책임감의 결여가 전방위에 퍼져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홀로 사지에서 벗어나기 급급했던 기관사는 승객 구조 노력을 제쳐놓고 객실 출입문과 전동차 전원장치 키를 빼내 달아났다. 192명이 목숨을 잃어 나라를 눈물바다로 만든 그때도 책임의식, 직업적 소명의식이 도마에 올랐다. 500여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고 직전 삼풍백화점 경영진은 붕괴 우려 상황을 보고받고도 보수공사를 강행했다. 정작 붕괴가 임박하자 이들은 1000여명의 고객을 버려둔 채 달아났다.

이 같은 책임의식 부재는 매뉴얼 재정비나 처벌조항 강화 등과 같은 하드웨어적 처방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월호 선장도 항해 기술은 배웠을지 몰라도 버큰헤드 같은 직업윤리는 배운 적이 없었을 것”이라며 “선진국가가 된다는 것은 결국 모두가 자기 책임을 지고 자신의 직업윤리를 지켜가는 사회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비컨헤드 정신

‘재난시 여자와 어린이, 노약자를 먼저 구하라’는 선원의 책임감과 직업윤리를 강조한 정신. 1852년 영국의 해군 수송선 ‘버큰헤드호’ 침몰 사고 때 함장과 병사들이 여성과 어린이를 먼저 구한 뒤 끝까지 배를 지킨 데서 유래했다.

임원기/고은이/마지혜 기자 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