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영의 ‘작품 80-3’.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종영의 ‘작품 80-3’. /김종영미술관 제공
조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마치 조각을 포기하기라도 한 것처럼 형상을 최소화하고 손맛을 가급적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조각하지 않으면서 조각하는 도를 따르는 사람”, 즉 불각도인(不刻道人)이라고 칭했던 추상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1915~1982)의 특별전 ‘무위의 풍경’ 전이 서울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경남 창원의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동양정신의 정수를 접했던 김종영은 휘문고보 졸업 후 도쿄미술학교에 유학해 서구 모더니즘의 추상조각을 흡수했다. 귀국 후 1948년부터 32년간 서울대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최만린, 최종태 등 추상조각의 대가들을 배출했다. 1953년에는 런던 테이트갤러리의 ‘무명 정치수를 위한 기념비’ 국제공모전에서 입상해 한국 조각가로서는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조각은 깎고, 쪼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서구의 조소미학과 달리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한다. 야무지고 세련된 마무리 대신 재료의 자연스럽고 소박한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나무와 돌의 자연스러운 결을 따라 설렁설렁 깎고 쫄 뿐이다.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을 드러낸 ‘자각상’과 ‘작품 80-1’은 그 대표적인 예다.

겉보기에 본질적 형태를 추구한 서구 추상조각을 따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인위를 최소화하고 물질의 본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노장사상이 깔려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형상은 비정형이고 비대칭이다. 이런 무위자연의 미학은 노장의 대표적 문구를 담은 서예작품과 단순한 형태감을 특징으로 하는 드로잉에도 잘 나타나 있다.

서원영 김종영미술관 학예연구사는 “김종영의 작품에서 접할 수 있는 노장사상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혜안을 얻기 위해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 6월1일까지. (02)3217-648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