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참척의 아픔을 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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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人災로 자식 앞세운 부모들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설 수 있도록
모두 힘 모아 상처를 보듬어줄 때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
슬픔에서 벗어나 다시 설 수 있도록
모두 힘 모아 상처를 보듬어줄 때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
어제로 꼭 1주일이 흘렀다. 온 국민을 망연자실 탈진 상태로 몰아간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 지도. 이제 우리 모두는 마음을 다잡고 ‘지속되는 삶’의 엄혹함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삶을 공유했던 이들의 죽음이야말로 우리네 생애주기의 가장 큰 고통임을 그 누가 부인하리요만, 그 가운데서도 자식 앞세우는 부모의 비통함은 헤아릴 수조차 없기에, 그 마음을 일컬어 참척(慘慽)의 고통이라 한다지 않던가. 작가 박완서는 자식 앞세운 어미의 절절한 슬픔을 풀어낸 소설 속에서, 자신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데,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모습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노라 고백한 바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딸을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 마음 또한 다르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들 곁엔 ‘가족’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할 것 같다. 가족의 존재 이유, 그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실감나게 다가옴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일상은 늘 크고 작은 위기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가족 연구자들은 가족이 직면하는 위기를 몇 가지로 유형화하고 있다. 일례로 대부분의 가족이 언젠가는 경험하는 위기를 규범적 위기, 일부 가족이 특별히 경험하는 위기를 비규범적 위기라 한다. 수(壽)를 다한 조부모의 죽음이 규범적 위기라면 꽃다운 청춘의 갑작스런 죽음은 비규범적 위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규범적 위기의 경우는 대체로 예측 가능하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나, 비규범적 위기는 예측 불허라는 점에서 크나 큰 상실감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가족의 힘으론 어찌해 볼 수 없는 외적 요인에 의해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쉽게 체념함으로써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반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로 인해 생명을 잃어야 했던 상황에서는 분노와 좌절에, 황망함과 무력감에 위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만일 선장과 선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과 소임을 다했더라면, 위험 감지 직후의 골든타임을 그토록 허망하게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탈출하라는 안내 방송이라도 제때 했더라면, 진정 여객선 안전 점검이 원칙대로 이뤄졌더라면 우리 아들딸들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을….
이들 가족 위기는 어떤 위기냐에 따라 극복 여부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지만, 동일한 위기라도 가족 성원들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장의 실직은 분명 위기지만 이를 계기로 가족 성원 모두가 생계를 위해 힘을 모을 경우 전화위복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듯이,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에 함몰되기보다는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감이 자녀들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 아니겠는지.
더불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을 많이 보유한 가족일수록 회복력이 크다는 사실 또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친족 및 이웃 공동체와 활발한 소통을 하는 가족일수록, 종교 및 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 가족일수록 위기 극복의 성공 확률이 높음을 기억할 일이다.
가족의 위기는 어느 한 시점에서 홀연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족 위기 극복의 전형적 특징이다. 불현듯 보고 싶은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참는 일이나, 자식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상실감이 되살아나는 고통은 참기 어려울 것이요, 수시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나 오늘의 참상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허망함을 다스리기 또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깊이 반성하면서, 세월호 침몰로 야기된 절박한 가족 위기의 극복을 위해선 서로의 힘을 모아 상처를 보듬고 상흔을 치유해줄 준비를 서두를 때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
삶을 공유했던 이들의 죽음이야말로 우리네 생애주기의 가장 큰 고통임을 그 누가 부인하리요만, 그 가운데서도 자식 앞세우는 부모의 비통함은 헤아릴 수조차 없기에, 그 마음을 일컬어 참척(慘慽)의 고통이라 한다지 않던가. 작가 박완서는 자식 앞세운 어미의 절절한 슬픔을 풀어낸 소설 속에서, 자신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데,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모습에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노라 고백한 바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딸을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하는 부모 마음 또한 다르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우리들 곁엔 ‘가족’이 있음을 기억해내야 할 것 같다. 가족의 존재 이유, 그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실감나게 다가옴을 증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의 일상은 늘 크고 작은 위기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가족 연구자들은 가족이 직면하는 위기를 몇 가지로 유형화하고 있다. 일례로 대부분의 가족이 언젠가는 경험하는 위기를 규범적 위기, 일부 가족이 특별히 경험하는 위기를 비규범적 위기라 한다. 수(壽)를 다한 조부모의 죽음이 규범적 위기라면 꽃다운 청춘의 갑작스런 죽음은 비규범적 위기에 해당된다. 문제는 규범적 위기의 경우는 대체로 예측 가능하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나, 비규범적 위기는 예측 불허라는 점에서 크나 큰 상실감에 심각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가족의 힘으론 어찌해 볼 수 없는 외적 요인에 의해 위기가 발생하는 경우엔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쉽게 체념함으로써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반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로 인해 생명을 잃어야 했던 상황에서는 분노와 좌절에, 황망함과 무력감에 위기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만일 선장과 선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책임과 소임을 다했더라면, 위험 감지 직후의 골든타임을 그토록 허망하게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탈출하라는 안내 방송이라도 제때 했더라면, 진정 여객선 안전 점검이 원칙대로 이뤄졌더라면 우리 아들딸들은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을….
이들 가족 위기는 어떤 위기냐에 따라 극복 여부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되지만, 동일한 위기라도 가족 성원들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가장의 실직은 분명 위기지만 이를 계기로 가족 성원 모두가 생계를 위해 힘을 모을 경우 전화위복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듯이, 생때같은 자식을 떠나보낸 슬픔에 함몰되기보다는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감이 자녀들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 아니겠는지.
더불어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을 많이 보유한 가족일수록 회복력이 크다는 사실 또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친족 및 이웃 공동체와 활발한 소통을 하는 가족일수록, 종교 및 사회단체 등 다양한 사회적 관계망을 유지하는 가족일수록 위기 극복의 성공 확률이 높음을 기억할 일이다.
가족의 위기는 어느 한 시점에서 홀연히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오랜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가족 위기 극복의 전형적 특징이다. 불현듯 보고 싶은 마음에 흐르는 눈물을 참는 일이나, 자식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상실감이 되살아나는 고통은 참기 어려울 것이요, 수시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나 오늘의 참상이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허망함을 다스리기 또한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우리 사회의 아킬레스건을 깊이 반성하면서, 세월호 침몰로 야기된 절박한 가족 위기의 극복을 위해선 서로의 힘을 모아 상처를 보듬고 상흔을 치유해줄 준비를 서두를 때다.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