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말 많은 로스쿨, 해법 없소?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가 피고소인에게 50개가 넘는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그런데 검사가 아무리 뜯어봐도 고소장에 나와 있는 항목으로는 죄를 물을 수 없었다. 나쁜 행위를 많이 했어도 죄가 되려면 형법전에 나와 있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를 구성요건 해당성이라고 한다. “범죄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검사가 난감해하자 변호사가 묻더란다. “그러면 기소유예되는 겁니까.” 범죄혐의가 인정되지만 이번 한 번만은 봐준다는 의미에서 재판에는 넘기지 않는 것이 기소유예다. 이 변호사는 형법총론 교과서에 나오는 구성요건 해당성의 의미나 기소유예의 법리를 제대로 몰랐던 것이다.

실무능력 떨어지는 로스쿨 출신

알고 지내는 한 부장판사는 “로스쿨 출신 로클럭(재판연구원)들이 자료 찾는 거는 잘하는 것 같다”고 에둘러 우려를 표시했다. 작년부터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바로 판사로 임용되지 않는다. 로클럭이나 검사 변호사 등 법조경력이 3년 이상 필요하다. 로클럭은 판사를 돕는 보조역할을 하지만 지원자가 많아 학교 성적 등을 기준으로 우수한 인재들을 엄선한다. 이 부장판사는 “로클럭들에게 판결문을 써보라고 했더니 걱정할 수준이더라”고 고개를 흔들었다. 일부의 과장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나돌고 있는 사례다.

법대를 나온 기자도 한때 로스쿨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영미계 로스쿨의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강의는 생소하면서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로스쿨생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영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의 실제 주인공이 되겠다며 한국의 법학도들이 줄줄이 유학길에 오르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풍속도가 판이하다. 미국의 법률시장도 경기를 타면서 로스쿨생의 절반 가까이가 직장이 정해지지 않은 채 졸업한다고 한다. 2004년 미국의 로스쿨제도를 우리보다 5년 먼저 도입한 일본도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작년까지 5년째 20%대를 맴돌면서 거품이 꺼지는 중이다.

적자에 과당경쟁까지

로스쿨 졸업생을 배출한 지 올해로 3년째다. 하지만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영미법과 대륙법 체계 간 차이를 무시하고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을 덜컥 도입하는 바람에 사법연수원 출신에 비해 로스쿨 출신의 실무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스펙 좋은 졸업생들이 많다”고 하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일부 대형로펌에 국한된 얘기다. 협소한 시장에 로스쿨 출신들만 매년 1500명씩 쏟아지니 선배 변호사들이 아우성이다. 로스쿨들은 과다하게 퍼부은 투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예외없이 적자타령이다. 누구하나 만족하는 이 없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바로 로스쿨의 현 자화상이다.

2017년 폐지키로 한 사법시험 존치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의학대학으로 돌아간 일부 의학전문대학원처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9급 공무원도 엄격한 선발시험을 거치는데 3급 고급공무원인 판·검사를 변호사시험 외에 공인된 추가 시험 없이 면접 등으로 뽑는다는 게 불합리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험제도 보완과 채용대책 마련을 위해 국회와 정부,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머리를 맞댈 때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