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허언증
프랑스의 극작가 앙드레 말로는 ‘인간의 조건’에서 클라피크라는 인물을 허언증 환자로 그렸다. 허언은 삶을 부정하는 방법의 하나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다른 작품에서도 허언증 환자를 등장시킨다. 일부에선 말로 자신이 허언증 증세를 갖고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도 허언증 환자가 나타난다. 허구와 현실을 왕래하는 작가들의 심정이 이들 환자에 투영됐을 것이다.

허언증은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믿어버리는 것이어서 단순한 거짓말과 다르다. 공상적 거짓말(pseudologia fantastica)이다. 자신까지 속이는 것이다. 타인에게 주목받으려는 욕구를 억제할 수 없어 자신을 주인공으로 멋진 스토리를 꾸며낸다. 자신의 세계가 완벽하고 욕망이 강한 사람들에게 많다고 한다. 자아도취성 성격장애의 한 특징이다. 그렇게 거짓말하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물론 정신적 질환의 하나다.

과학자에게서 허언증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1903년 새 방사선 N선을 발견한 프랑스의 르네 블론로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이 방사선이 X선에 비해 훨씬 굴절이나 반사가 잘 된다고 설명했다. 몇 년 뒤 이 광선이 허위임이 입증됐지만 블론로는 끝까지 이를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중에 정신병에 걸려 최후를 맞는다. 1989년 미국의 플라이슈만 교수는 상온 핵융합기술을 만들었다고 떠들어댔지만 허위였고 최근 일본에선 젊은 여성과학자가 만능 줄기세포를 개발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이 여성과학자는 자기의 연구가 진실이라는 사실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사실로 검증하고 싶은 욕망과 강박에 시달린다. 이들은 가설과 사실 사이에서 자칫 허언증의 유혹에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신체가 거짓말하는 병도 있다. 물론 꾀병과는 다르다. 의학 용어로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한다. 이 환자들은 급성 복통이나 발작을 일으킨다. 이들은 심하게 아팠을 때 누군가의 돌봄으로 회복됐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갑작스런 복통은 자신의 추억으로 돌아가고픈 욕망이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현상이 퍼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단계를 믿으며 일확천금을 꿈꾸는 학생이 늘어나거나 자신을 진짜 명문대생으로 착각하는 가짜 학생도 많다. 의외로 정치가들도 많다고 한다. 자칭 민간 잠수사의 거짓 인터뷰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허언증에 너무 노출돼 있다. 이게 더 문제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