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한국 정부는
[한경에세이] 새 역사의 시작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깨지고 하루에도 100개를 넘는 기업이 문을 닫았다. 순식간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국민 생활도 송두리째 흔들렸다. 한마디로 우리의 모습은 너무나 참담했다.

나는 당시 부산은행 자회사였던 부은리스의 회사청산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모든 임직원이 아픔을 함께 나누며 은행을 살리기 위한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전개했다. 지역민의 사랑과 응원도 큰 힘이 됐다. 부산은행은 그렇게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많은 금융회사가 혹독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을 퇴출시켰다. 나머지 부실은행에 대해서는 경영정상화 계획을 조건부로 승인하고 막대한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그 중심에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한빛은행을 필두로 경남은행, 광주은행 등이 합쳐 설립됐던 우리금융그룹이 있었다.

최근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방은행 분리 매각의 분수령이었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를 통과했다. 본회의 통과에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로써 민영화의 마지막 단계인 우리은행 매각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외환위기 이후 끝나지 않았던 금융산업 구조조정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순간이 비로소 다가오는 것 같다.

올초 BS금융그룹은 경남은행 노조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경남은행과 부산은행이 ‘투뱅크’ 체제를 갖추고 동남 광역권을 넘어 세계로 나아갈 계획도 마련하고 있다.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앞으로 금융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신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균형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이 되지 못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좋은 기업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변화를 두려워해서 도전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담대하게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갈 것이다.

성세환 < BS금융그룹 회장·부산은행장 sung11@busanban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