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 "넋놓고 있을 시간 없다…범시민사회 안전기구 만들자"
“유가족들과 살아남은 학생들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해소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급합니다.”

여객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벌써 2주째. 아직도 100여명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물론 전국민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할 만큼 가라앉아 있다. 누구도 “빨리 슬픔을 잊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나서지 못하는 때에 조용근 천안함재단 이사장(사진)이 입을 열었다. 그는 4년 전(2010년 3월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재단 이사장을 맡아 4년째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고 있다. 세무법인 석성 회장인 그는 2004년 대전지방국세청장을 끝으로 38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현재 석성장학회와 중증장애인 재활을 돕는 석성일만사랑회 등을 이끌고 있다.

“누구보다 피해자들의 심정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천안함 때와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그 슬픔과 분노의 정도는 같을 겁니다. 국민들이 함께 울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넋 놓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조 이사장은 천안함 사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유가족의 슬픔을 보듬는 것과 함께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것이라고 했다. “4년 전 국민 성금이 395억원이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5억원씩 드렸고, 남은 돈으로 재단을 발족시켜 안보체험, 장학사업 등을 하고 있지요. 돌이켜보면 그때 가장 잘한 일이 생존 장병들에게 위로금을 주고 전문가 상담, 멘토·멘티제 등을 통한 심리치료를 했던 거예요. 유가족의 반발도 있었지만, 살아 돌아온 게 죄는 아니잖습니까.”

천안함 당시 희생자는 46명이었고 생존 장병은 58명이었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던 생존 장병들은 재단의 도움으로 이제는 대부분 일상에 복귀했다. 34명은 아직 현역으로 복무 중이다.

조 이사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범시민사회 안전기구’ 설립을 제안했다. “대한민국 안전 문제를 업그레이드하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 가족의 안전을 직접 챙기자는 겁니다. 안전펀드를 만들어 해상, 항공은 물론 자동차 뺑소니 같은 경우도 감시할 수 있는 범시민 감시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함께 울어주는 것과는 별개로 이젠 행동으로 나설 때입니다. 천안함재단도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그는 또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인한 또 하나의 걱정이 있다고 했다. 선실이 더 안전하다며 학생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자신들만 탈출한 어른의 말을 아이들이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 막막합니다. 무책임한 선장을 욕하고 처벌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우리 스스로도 선장의 입장이 되면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도 있게 만든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자라는 학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롤모델, 즉 ‘영웅’을 많이 만들자는 것이죠. 지금 우리는 영웅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안전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예를 들며 한국인의 의식 개선 필요성도 주장했다. “일본에선 9개 잘못한 사람이 1개를 잘하면 잘한 부분을 칭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9개를 잘하더라도 1개를 잘못하면 다 못하는 사람으로 몰아가지 않나요. 분명 바꿔야 할 문화입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